공동우물
동네 사람과 소문이 모이는 곳
옛날 옛날에는 사람들이 물을 먹고 싶었을 때는 하천이나 샘에서 물을 구했다. 그때는 그곳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그 뒤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고 나서 모이는 장소가 확대되었다. 물(水)을 같이(同) 먹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동네(洞)이다. 학교 다닐 때 경북 월성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친구가 동해 바다를 가리키며 이곳이 미국사람들과 같이 쓰는 물이라 하여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어릴 때 집 앞에 공동우물이 있었다. 수도가 없었기에 학교 갔다 오면 언덕을 내려가서 공동수도에서 물통으로 물을 길러 정지(부엌)에 있는 두멍(독)에 물을 채웠다. 우물물은 방마루 청소를 하고 마당에 물을 뿌리고 마당을 쓸었다. 날이 가물면 밭에 물을 퍼붓는 용도로도 썼다. 늦가을에 창호지를 바를 때면 문짝째 들고 가서 물을 퍼부었던 우물이었다. 겨울 김장철에는 추워서 두레박줄에 손이 쩍쩍 달라붙어 호호 불어가며 물을 길렀고, 어머니는 허리가 부러져라 배추를 씼었다. 비가 넉넉히 오면 우물에 나가 등목도 하고 넉넉하게 쓸 수 있었지만 여름에 가뭄이 들면 두레박이 바닥에 긁히는 것이 보일 정도로 우물이 말랐다. 우물에서는 더러워질까 봐 빨래를 안 하기도 하지만 빨랫감이 많으면 어머니는 빨랫감을 이고 십리나 되는 낙동강까지 가셨다.
가뭄이 들어 바닥이 보일 때면 우물바닥을 청소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물은 깊었다.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은 긷지 못한다는 말은 이곳에서도 통한다. 우물을 칠 때면 동네에서 아이들이 긴 두레박줄을 타고 내려갔다. 우물을 치는 것은 동네에 큰 일이었다. 남자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게 줄을 잡고 청소를 거들었다. 우물이 집앞에 있으니 우리 집은 동네 사람이 기웃거리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들어오면 텃밭에 있는 상추나 고추를 뜯어서 주기도 하고, 나물을 씻으러 왔다가 한 줌 놓고 가기도 한다.
우물은 안부인사를 나누기도 하지만 소문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우물가에서 싸움 난다는 얘기는 있지만 동네 인심이 생기는 장소였다. 그 뒤로 수도가 집집마다 들어오면서 우물에서 만나는 일이 줄었다. 나중에는 도로가 우물이 있는 곳으로 나는 바람에 그 우물도 없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던 우물이 없어지며 만남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니 더운 여름날 우물가에 나가 등목을 하던 생각이 난다.
우물 / 이태준고택 수연산방 (서울 성북구 성북동)
우물 / 영랑생가 앞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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