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곳간/선비마을 이야기

추사 김정희 입춘첩(立春帖)

향곡[鄕谷] 2007. 3. 4. 12:42



추사 김정희 입춘첩(立春帖)

 

 

 

6세 어린 나이에 김정희가 그린 그림과 글씨를 보고 무릎을 쳤다는 박제가의 소문은 장안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그러나 김정희의 소문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이자 명신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이었다.  일찍이 영조로부터 '나의 사심없는 신하이고 너(정조)의 충신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노 재상 채제공은 어느 날 추사의 집 앞을 지나다 대문 위에 걸린 글씨 한 점을 보게 되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대문 앞에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쓴 입춘첩(立春帖)이 내걸려 있었다. 평범한 넉자의 글씨였으나  그 글씨의 뛰어남을 본 채제공은 평소 김노경의 가문과 대대로 좋지 않게 지내는 사이였으면서도 특별히 집으로 찾아 들어갔다.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에게 그 글씨의 주인공이 누군지 물어보고 불러오게 하였다. 채제공 앞에 온 사람은 일곱살 김정희였던 것이다.    그 글씨를 본 채제공은 놀라면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였다.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로 인하여 팔자가 사나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붓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으며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린다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입니다."  

 

 먼 훗날 얘기지만 채제공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추사 김정희는 글씨로 이름을 세상에 날렸지만 노년은 비참하였다. 이는 당대 제일의 문장가였던 채제공의 뒤를 따르기 보다는 당대 제일의 사상가였던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뒤를 따른 결과였다. 이 이야기는 김정희가 직접 자신의 종손인 김태제(金台濟)에게 해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