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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걸어서 보는 세상/서울 걷기 좋은 길

한양도성 1 / 북악산길 (1)

향곡[鄕谷] 2007. 4. 7. 11:45

 

북악산길 (1) 

한양도성 139년 만에 개방

 

2007.4.6

와룡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백악마루(342m)-창의문(2시간 반)

 

 

북악산은 1967년 북한 124군 특수부대가 청와대 습격시도사건 발생 후 39년 동안 막아 두었던 산이다. 북악산을 일반에 처음 개방하는 날 탐방에 참가하였다. 북악산(北岳山)은 예로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다. 이번에 올라보니 산정에 새로 세운 표지석도 '백악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삼각산이 남쪽으로 내려와 백악산이 되었다. 한양은 동서남북쪽 방향이 큰 강이고, 서쪽으로 바다의 조수와 통한다. 여러 곳 물이 모두 모이는 그 사이에 백악산이 서리고 얽혀서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알려져 있다"라고 썼다.

 

무학대사가 궁성터를 정하고 난 뒤, 태조가 외성을 쌓으려고 하였지만 성의 원근 경계를 지을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바깥은 눈이 쌓이고 안쪽은 녹아 그것을 경계로 성을 쌓도록 했다 한다. 여하튼 1394년 한양 천도와 건설을 시작하여 북악 인왕 남산 낙산을 잇는 도성을 쌓고, 4대 문과 4 소문을동서남북에 내고 성밖 10리까지를 경계로 삼았다. 성 밖은 외사산인 북한산(북) 덕양산(서) 관악산(남) 용마봉(동)이 한양을 에워싸고 있다. 청계천 물도 이곳 북악과 인왕에서 흘러드니 여러모로 우리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산이다.

 

성균관대 후문에서 출발하여  와룡공원을 지나니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높다란 성곽이 눈앞에 들어왔다. 말바위 올라서니 서울 시내가 훤하고 한편엔 경계병이 있었다. 봉우리 바위가 말을 닮았다고 그리 불렀다고 한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니 말바위쉼터다. 여기서부터는 신원 확인 후 인솔자 안내에 따라갈 수 있는 곳이다. 간단한 안내사항을 듣고 이내 다다른 곳이 한양의 북문이었던 숙정문(肅靖門)이다. 당초 홍지문(弘智門)이었는데 이름도 바꾸고, 부근 지형이 경복궁 양팔에 해당된다 하여 600년 가까이 닫아두었다. 이래저래 닫은 날이 더 많은 문이다. 

 

성곽 위 담장을 여장 혹은 성가퀴라 하는데 대체로 보존이 잘된 편이다. 성곽 쌓은 돌은 깎은 돌의 정교한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모양새를 보면 어느 것이 태조, 세종, 숙종 때 쌓은 것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을 대체로 짧은 기간에 쌓았고 처음부터 남쪽은 자연석대로 두었으며, 병자호란 후 인조의 항복문서에 더 이상 성곽을 보수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방어의 용도도 쓰지 못하였을 것 같다.

 

청와대 쪽이 보이는 곳이나 부대 쪽은 나무칸막이로 막아두고 군데군데 경계병이 있었다. 성곽을 따라 정상인 백악마루에 올라서면 북한산 족두리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이 눈앞에 보인다. 조선시대엔 북악산 바로 밑은 행세께나 하는 양반들이 살았고 북악산에서 보이는 인왕산골짜기나 남산엔 벼슬 없는 가난한 양반들이 살았다. 

 

오르는 길도 계단이 많지만 백악마루부터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 계단이라 무릎이 아프다. 내리막 끝이 자하문이라고 부르는 창의문(彰義門)이다.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  인조반정을 일으킨 義軍이 이 문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