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서울 경기 탐방 70

선농단과 향나무 / 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선농단과 향나무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024.9.27)   조선시대 국가의 기간산업은 농업과 잠업이었다. 그래서 왕은 친히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하였고, 왕비는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를 하였다. 서울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과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先蠶壇)은 이런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었다. 왕이 친히 밭을 갈던 터와 선농단이 있던 곳이 제터로 지금 제기동(祭基洞)이다.  전철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선농단 300m라 쓴 표지판이 보인다. 선농단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성종 때 조성한 선농단은 일제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면서 터를 뺏..

상전벽해 잠실

상전벽해 잠실 서울 송파구에 잠실(蠶室)은 조선초에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하였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말로 하면 누에방이다. 조선이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면서 풍수상 안산(案山)인 목멱산(현재 남산)이 누에처럼 생겼기에 누에가 경복궁을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고 잠실을 조성했다는 얘기다. 누에가 뽕을 먹는 것이 잠식(蠶食)이니 왕권을 잠식하여 해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당시 잠실은 동잠실인 잠실과 아차산 부근, 잠원동, 연희동 서잠실 등에 잠실이 있었으나 지금 송파구 잠실이 그 이름을 대표로 남기고 있다. 잠실은 원래는 섬이었다. 잠실은 잠실도(蠶室島)와 부리도(浮里島)가 있었는데, 부리도는 지금 종합운동장 앞 정신여고와 아시아공원 일대였다. 잠실도 북쪽으로는 신천강이 흘렀고, 남쪽으로는 송파..

마현마을에 가서 열초산수도를 보고

마현마을에 가서 열초산수도를 보고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전날 밤까지 비가 오더니 밤새 그쳐 마현마을 앞 강물은 넘쳐흐른다. 여유당 앞 들에는 금계화가 시들고 여름이 건너가고 있었다. 다산은 18년 귀양살이 후 해배되어 이곳에 돌아와서, '조용한 저 운림(雲林)은 푸르고 깊숙하네, 여기서 놀고 쉬며 나의 마음 즐기노라' 하였다. 마현마을의 풍경은 그만큼 깊고 그윽한 곳이다. 강가에는 달을 즐겼다는 수월정(水月亭) 정자가 있고, 그 앞에는 다산이 고향에 돌아와서 만년에 그렸다는 열초산수도를 돌에 새겨 놓았다. 그림은 꼼꼼하면서도 절제가 있다. 다산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아 귀한 작품이다. 몇 년 전 공개한 작품으로 문인이자 정조의 부마 홍현주가 가지고 있던 소장품이다. 그림에 있는 칠언절구의 시를 풀어보..

전쟁기념관 / 호국의 전당

전쟁기념관 / 호국의 전당 2018.1.3.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조선시대 시인 이건창이 충무공 무덤을 지나면서 묘비명을 읽고서 쓴 시가 있다. 그 시 말미에 "서풍 부는 한 저녁에 차가운 솔바람 소리 / 한산도 왜적 칠 때 그 소리 같다"고 했다. 새해초 바람이 차가운 날 해가 기울어 가는 무렵에 전쟁기념관을 들렀더니, 겨울바람 차갑기가 그 소리 같았다. 전쟁의 시초가 언제였던 그 원인은 집단의 욕심이나 안위요 서로 극히 미워함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그 상황이 현재진행형인 것이 우리의 처지다. 그 혹독한 전쟁의 상흔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마음이 아린 곳이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곳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 ※ 교통편 : 전철 6호선 삼각지역 12번출구, 4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 ※ 관람..

익선동 골목길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익선동 골목길 서울 종로구 익선동 (2017.6.14) 익선동은 인사동과 낙원동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종로3가에 있는 낙원상가 동쪽이 익선동이다. 익선동(益善洞)은 조선시대에 이 지역 정선방(貞善坊)에 철종의 형인 영평군(永平君)이 살던 누동궁(樓洞宮)이 있었다. 조선 한성부는 모두 5부(部) 52방(坊)이 있었다. 부(部)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구(區)이고, 방(坊)은 동(洞)이다. 5부 중 중부(中部)에 정선방이 있었다. 궁이나 객사의 가운데 집을 정당(政堂)이라 하였고, 곁집인 행랑을 지었는데, 좌우에 붙여 지은 곁채를 익랑(益廊)이라 하였다. 우리 말로 풀자면 날개집이다. 그 궁에 행랑인 익랑(益廊)이 있어 익랑골이라 불렀던 곳이다. 일제 시대에 익랑골의 '익', 정선방..

이화동 벽화마을 2 / 색깔이 있는 풍경

이화동 벽화마을 2 색깔이 있는 풍경 서울 종로구 이화동 (2017.5.24) 이화동 벽화마을을 두어 번 찾아가서 골목과 특색있는 벽화를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색깔을 주제로 찾았다. 산을 계절별로 찾아가면 보는 풍경이 다 다르듯, 같은 내용도 보는 각도에 따라 보는 내용이 다 다르다. ※ 교통편 : 4호선 혜화역 2번출구

(구)서울역사 / 서울의 관문, 일제 대륙침략의 발판

(구)서울역사 / 국가사적 제284호 서울의 관문, 일제 대륙침략의 발판 숭례문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구)대우빌딩 앞에 (구)서울역사가 있다. 비잔틴풍의 돔을 한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러 오가는 서울의 관문이다. 지금은 그 옆에 새로운 서울역사를 지어서 사용하고 있다. 역 앞은 가끔 데모대가 이용하고, 노숙자들이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역의 옛 이름은 경성역이었다. 1922년 착공하여 1925년 준공한 이 역사는 일제가 일본-조선-만주를 연결하는 철도를 놓아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지었다. 1899년 경인선을 개통하면서 남대문역을 세웠는데, 한양의 풍수를 파괴하기 위해 역을 숭례문 안으로 끌어들여 경성역으로 만들려 하였으나, 백성과 ..

한양도성 흥인지문 주변 성곽 각자를 새긴 돌

한양도성 흥인지문 주변 성곽 각자를 새긴 돌 한양도성 흥인지문 주변 성곽 공사를 하면서 없어진 돌들이 있다. 쌓은 시기, 감독관, 석수 등과 맡고 쌓은 위치를 알 수 있는 돌들이다. 일두패(一牌頭)는 일패장(一牌將)과 비슷한 뜻으로 한 패를 이끄는 대장이고, 훈국(訓局)은 훈련도감에서 축성을 했다는 것이며, 절충(折衝)은 정3품 절충장군, 사과(司果)는 정6품 무관직책이 감독하였다는 것이며, 석수 도변수(石手 都邊首)는 석수의 우두머리인데 각각 그들의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한양도성을 쌓고 감독하였던 사람들의 직책과 실명이 있던 돌들이 최근 공사를 하면서 각자를 새긴 이 돌들을 일부 앞으로 옮겨 놓았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인데, 모를 일이다. ※ 참고 서적 :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

이화동 벽화마을

이화동 벽화마을 서울 종로구 이화동 (2015.12.10) 낙산 성곽을 오르내리느라 이화동을 지나간 것이 열 번도 넘는다. 그곳을 오를 때마다 이렇게 좋은 조망처에 사람이 적은 것이 늘 의아스러웠다. 낙산 부근은 조망도 좋은 데다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탐방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즐거움이다. 주변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사람들 발길이 늘었다. 카메라를 들고 오는 학생들은 늘 있고, 외국인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차츰 늘었고, 최근엔 히잡을 쓴 중동지역 관광객들도 새로 꾸민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러 온다. 그림 그린다는 것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붓을 들고 담벼락을 그림판으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면 즐겁지 않을까?. 그런 기회가 있다면 큰 담에 그림을 쓱싹쓱싹 그리고 싶다. ※ 혜화역-이화장 앞길..

돈의문터(서대문)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

돈의문 터(서대문)에서 서대문역-돈의문터-칭경기념비각-피맛골-보신각-태화빌딩-탑골공원-종묘광장- 흥인지문 이동 거리 6.9㎞. 2시간 30분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2014.6.4 맑음) 이번 걷기의 주제는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걷던 뒷골목과 도로의 원점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시작점인 서대문에서 세종로 네거리까지는 조선 건국 이전에는 없던 길이다. 서대문 네거리에서 남북으로 난 의주로는 일제가 지은 이름이니, 침략의 야심이 숨어 있는 이름이다. 서대문은 세종 때 지금의 정동 네거리로 옮기며 돈의문이라 하였다. 새로 낸 문이라 새문이요, 그 길이 신문로 (새문안길)이다. 인왕산 능선이 내려오는 지점이라 거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인왕산이 있다. 돈의문은 일제가 전차길을 복선으로 깔면서 1915년 헐었다.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