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서울 경기 탐방 70

서촌 탐방 3. 서촌 '어둠의 시대'

서촌 탐방 3 서촌 '어둠의 시대'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자하문로 (2014.4.2, 2014.4.12) 서촌은 처음 조선의 왕실이 자리 잡았고, 조선이 기울자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조선의 땅을 어둠으로 몰아 넣은 사람들이 자리 잡은 땅이 되었다. 조선을 강제적으로 합병하는데 앞장선 대표적 매국노 이완용이 자리 잡은 터가 서촌이다. 나라를 욕되게 하고 서촌을 욕되게 한 자이다. 옥인동 18번지와 19번지를 찾아가 보았더니 국민은행과 옥인교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택이 3천5백 평이라니이라니 일제로 부터 받은 은사금으로 받아 평생 살 줄 알았는가? (그도 합병 16년 뒤에 갔다) 나라를 팔아먹은 막후 일인자는 윤덕영이다. 시종원경(요즈음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순종을 압박한 자이다..

서촌 탐방 2. 안평대군의 몽유도원을 찾아

서촌 탐방 2 안평대군의 몽유도원을 찾아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자하문로 (2014.4.2, 2014.4.12, 2014.5.7) 안평대군은 세종의 아들로 큰형인 문종과 한 살 위에 형 수양대군이 있었다. 그는 시가 뛰어나고, 글씨가 좋고 출중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정쟁에 희생되어 시신도 무덤도 없으며, 그가 평생 모은 진귀한 글과 그림은 모두 흩어지고 사라졌다. 이제 서촌 두 번째 탐방은 안평대군이 살며 무릉도원을 꿈꾼 집 비해당터와, 꿈꾼 것을 몽유도원도로 그리게 하고, 인왕산 기슭에 가본 뒤 꿈속 모습과 정말 같다고 탄복하여 그 자리에 세운 무계정사터를 찾아 나섰다. 서촌에서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어느 골목에서 보나 인왕산이 골목 사이로 조금씩 보인다. 세종이 태어난 곳인 우리은행 효자..

절두산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 96-1 (2014.4.16) 조선시대 양화나루 잠두봉이었던 이곳은 한강의 명승지 그것으로 유적지인 데다, 병인박해(1866년) 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교수형을 당하여 머리가 잘렸다고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란 이름을 가졌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여 병인박해 100년이 되던 1967년 성당과 박물관을 준공하였다. 성지 중간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 철교가 지나가지만 엄숙한 이곳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성당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엄숙하여 저절로 그 분위기에 젖을 수밖에 없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박물관에 들어가면 옛 신자들의 교리서, 박해 기록, 사목자의 유품 등이 있고, 설명을 통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다. ※ 교통편 : 서울 지하철 2호선,6호선 합정역 ..

서촌 탐방 1. 서촌의 왕족과 사대부

서촌 탐방 1 서촌의 왕족과 사대부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자하문로 (2014.4.2, 2014.4.12, 2014.5.7) 경복궁 동쪽에서 창덕궁 사이를 북촌이라 하고,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사이를 서촌이라 부른다. 서촌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래 새로 자리 잡은 마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왕족이 살기 시작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선 사대부가 살았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여유가 생긴 중인 계급들이 살았다. 일제 강점기엔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어 역사의 부침과 더불어 흥망성쇠를 같이 한 사람들이 살던 땅이다. 요즈음 서촌에 가면 '세종대왕이 나신 마을'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경복궁역 북쪽이며 경복궁 서편에 있는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자리가 준수방(俊秀坊)이..

대학로 부근 문화유적

서울 대학로 부근 문화유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원 (2013.7.9) 역사와 문화의 터전을 찾아다니다 보면 가까이에 이렇게 훌륭한 볼거리가 많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많다. 오래된 도시 주변엔 찾을만한 문화유적이 많고, 공부하며 다니다 보면 갈 곳이 없어 망설일 일이 없다. 다니며 무지를 조금씩 벗는다. 이번에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살아있고, 문화의 생기가 넘치는 서울 대학로 주변을 선택하였다. □ 성균관(成均館) 대성전,동무와 서무,명륜당,외삼문 (보물 제141호) -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번지. 성균관대학교 성균관은 조선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한 후 1397년 바로 착수하고 1398년 준공하여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500년 가까이 조선시대 최고 국립교육기관이었다. 소과(小科)에 응시하여 생원..

정순왕후(단종비)가 지내던 곳

정순왕후(단종비)가 지내던 곳 서울 동대문구 숭인동 일원 (2013.6.12) 청계천 영도교-여인시장터-정업원터-청룡사-동망봉-자주동샘 (2시간) 청계천 물은 맑고, 크고 작은 물고기도 많다. 오리가 있었다면 물고기들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물고기들이 살판났다. 은빛인 피래미 암놈은 물속을 휘저어 다니고, 붉그스레 한 투명한 빛이 배 밖으로 드러나는 피라미 수놈 불거지는 몸을 비비며 정답다. 이 개천도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 양난 후에 한양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물이 더러워지고 흙도 많이 쌓였다. 그래서 조선 영조 때 청계천 흙을 퍼내서 산더미처럼 쌓았는데, 그곳 동네 이름이 조산동이고 나중에 방산동으로 바꾸었다. 한 때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이 있었던 이간수문에서 청계천으로 발길을 옮기면 청계 7가와 8가 ..

한성백제문화 탐방

한성백제문화 탐방 석촌동고분군-한성백제박물관-몽촌토성-풍납토성 / 서울 송파구 (2012.10.6. 맑음. 16.1~24.5℃) 석촌역 6번출구-석촌동고분군-석촌호수-서울놀이마당-송파구청-평화의문-한성백제박물관-몽촌토성- 곰말다리-성내교-풍납중학교-올림픽교남단-풍납토성-천호교 (10.4㎞. 박물관 관람시간 1시간20분 포함 4시간10분) 기원전 18년에서 시작한 백제는 660년에 멸망하였으니 678년간 나라를 이어갔다. 그 중 한성백제는 475년까지 493년간이니 한성백제의 존속기간이 제일 길었다. 그 뒤 웅진(공주)백제가 38년,사비(부여)백제가 137년이었다. 한성백제의 초기 유적인 석촌동고분부터 탐방을 시작하였다. 본디 이름 '돌마리(돌마을)'는 한자로 석촌동(石村洞)이고, 적석총(積石塚)은 우리말..

국립묘지 현충원

국립묘지 현충원 서울 동작구 동작동 (2011.6.26) 벌써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예순한 번째가 되었다. 세상에 나서 나라를 위해 바친 목숨은 다 숭고한 것일 테지만 이리도 많은 목숨이 나라 위해 잠들었단 말인가. 잠드소서 깊이 잠드소서 영령이시여. 현충문 현충탑 박정희대통령 육영수여사 묘소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소 애국지사묘소 임시정부 국무령 묘소 임시정부 요인 중 후손이 없는 지사 위패를 모신 곳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현충문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와 이정 원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稱慶記念碑)와 이정 원표(里程元標)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 (2010.4.22)   ○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稱慶記念碑) / 사적 제171호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즉위 40년이 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면서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가 칭경기념비이다. 비의 전액은 당시 황태자였던 순조가 썼고,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다. 비전(碑殿)은 추녀가 날아갈 듯 한껏 멋을 내었고, 돌계단엔 해태가 앉아서 경계를 서고 있다. 비전 앞에 무지개 모양으로 아담하게 세운 만세문은 당초문양을 넣어 섬세하고도 화려하다. 만세문은 일본인이 가져간 것을 해방 후 찾아서 복원하였다. 비전은 6·25 전쟁 때 파손된 것을 일부 보수하였으며, 1979년 완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