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 ' 먼 산 ' 먼 산 천상병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은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 먼 산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 무학봉에서 (경기도 가평) 글곳간/산시(山詩) 2018.01.06
정희성 시 '태백산행'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 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홀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태백산 (2007.2.3) 글곳간/산시(山詩) 2015.01.11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으로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 글곳간/산시(山詩) 2014.08.11
법정 시 '산' 산 法頂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영남알프스 첩첩능선 (2005.10.2 신불산에서) 글곳간/산시(山詩) 2006.02.23
만해 시 '無題' 無題 만해 한용운 靑山이 萬古라면 流水는 몇 날 인고. 물을 좇아 山에 드니 오간 사람 몇 이던고. 靑山은 말이 없고 물만 흘러가더라. 설악산 구곡담계곡 ( 2005.11.12 ) 글곳간/산시(山詩) 2005.12.15
두목 시 '산행(山行)' 山行 杜牧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멀리 서늘한 산 위로 돌길이 비껴있고, 흰구름 이는 곳에 집 한 채로구나. 저물녘 단풍 숲이 좋아 수레를 멈추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구나 *두목(杜牧. 803~852) : 자(字)는 목지(牧之)이고 호(號)는 번천(樊川)이며, 소두(小杜) 또는 李商恩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라 불리고, 번천문집(樊川文集)이 있다. 두목이 수레를 타고 가을 산에 올라 시로 그린 그림 같은 山景이다. 글곳간/산시(山詩) 2005.11.21
정인보 시 '조춘(早春)' 早春 정인보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손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울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ㅎ다 말고 헤쳐 본들 어떠리 영월 태화산에서 (2005.5.1) 글곳간/산시(山詩) 2005.09.27
김상옥 시 '싸리꽃' 싸리꽃 김 상 옥 그 꽃은 작은 싸리꽃 산들한 가을이었다 봄 여름 가리지 않고 언제나 가을이었다 말라서 바스러져도 향기 남은 가을이었다 글곳간/산시(山詩) 2005.09.27
박목월 시 '길처럼' 길처럼 박목월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산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글곳간/산시(山詩) 2005.08.26
신경림 시 '갈대'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 가평 양지말 (2015.10.31) 글곳간/산시(山詩) 200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