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세월 속으로 56

엿장수 가위 소리 / 찰크락 찰크락… 맛있는 엿이요

엿장수 가위소리 찰크락 찰크락… 맛있는 엿이요 수능시험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시험 치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잘 치르도록 응원을 한다. 예전에는 학교 교문에 엿을 붙였다. 엿을 붙이고 시험에 척 붙기를 소망하였다. 엿을 붙이는 기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부엌신인 조왕신은 설날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보고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궁이에 엿을 발랐다. 엿이 입에 붙어서 하늘로 올라가서도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절에 들어가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엿을 고아 먹였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단 것이 좋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먼 길 떠나는 사람과 임신한 사람에게 엿을 주었는데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근친 갔던 새색시는 시가로 돌아올 때 엿을 만들어 친척들에게 돌렸다. ..

야간 통행금지 / 밤이 늦으면 다닐 수 없다는 것

야간 통행금지 밤이 늦으면 다닐 수 없다는 것 조선시대와 해방 후 1981년까지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다. 밤이 늦으면 길에 다닐 수 없었다. 이를 통금이라 그랬다. 조선시대에는 밤 11시(이경)부터 새벽 4시(오경)까지가 통금 시간이었다. 이경에 인정(人定)이라 하여 종각에서 28번의 종을 쳐서 사대문을 걸어 잠갔고, 새벽 4시에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의 종을 쳐서 아침을 시작하였다. 이 제도는 고종 말년인 1895년에 없어졌다가 해방 후 생겨나 1981년 말까지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에서는 밤 0시, 새벽 4시, 정오에 경찰서 망루에서 사이렌이 울려서 그 시각을 알렸다. 치안유지가 목적이라 하여 자유로운 통행을 제약한 조치였다. 집에서도 자녀들 안전과 가정교육을 위해 통금시간이 있기는 하다...

징검다리 / 징검돌 건너가는 추억의 다리

징검다리 징검돌 건너가는 추억의 다리 시냇물이나 도랑물에 돌을 띄엄띄엄 놓아서 건너는 다리가 징검다리이다. 다리는 분리된 두 곳을 연결한다. 징검다리는 양쪽을 연결하는 매개체를 뜻한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여 소통하고, 떨어진 길과 길을 연결하고, 종교에서는 하늘과 땅,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연결한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도 있다. 사전에서 '징검징검'은 띄엄띄엄 징거서 꿰매는 모양 또는 발을 멀찍멀찍 떼어 걷는 모양이다. '징검'이란 '징그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옷이 해지기 쉬운 부분을 다른 천을 대고 듬성듬성 꿰매고, 큰옷을 줄이기 위해 접어 넣고 듬성듬성 호는 것이 '징그다'이다. 징검바늘은 듬성듬성 꿰매어 바늘질하는 바늘이다. 임시로 꿰어 두거나 바느질을 해서 줄일 자리를..

맷돌 / 맷손을 돌려 가루를 만드는 도구

맷돌 맷손을 돌려 가루를 만드는 도구 맷돌은 맷손을 돌려 가루를 만드는 도구이다. 인류가 돌이나 나무로 곡식을 갈아서 먹던 시대에서 더 나아가 기원전 천 년 경 맷돌을 만들었다. 아래위 두 개의 맷돌이 있어, 위에 것을 암맷돌, 아랫 돌을 숫맷돌이라 한다. 가운데에 숫쇠(중쇠라고도 함)라는 쇠꼬챙이가 꽂혀 있고, 숫쇠를 싸고도는 암쇠가 있다. 윗돌 옆구리에는 기역자로 만든 손잡이인 맷손을 끼워 넣었다. 맷손을 어처구니라고도 한다. 아래위 맷돌은 마찰력을 높이려고 정으로 쪼아서 꺼끌하게 만들었다. 윗맷돌에는 곡식을 넣는 아가리가 있고 아래로 곡식이 내려가게 뚫려 있다. 곡식을 넣고 맷손을 돌리면 맷돌의 회전력과 마찰력에 의해 갈린 것이 맷돌 옆으로 나온다. 곡식이 옆으로 잘 나오게 하려고 위 짝과 아래 짝..

금줄 / 아직도 약속의 금줄이 있지요

금줄 아직도 약속의 금줄이 있지요 아이들 울음소리를 들어 본 지 오래된 마을이 늘어가고 있다. 그만큼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 생명의 탄생은 감동적인 일이다. 모두가 반기는 그 일이 우리 집에서 생겼다. 전에는 해산이라 하여 몸을 푼다고 했는데, 해(解)는 쪼개어 나눈다는 말이고, 출산의 출(出)은 나온다는 말이겠다. 분만(分娩)이란 말도 있는데, 분(分)은 나눈다는 것이고 만(娩)은 임신에서 벗어난다(免)는 말이니 임신하였다가 몸을 나눈다는 말이다. 임신(妊娠)은 배가 불룩해진 임(姙)이요 아이가 움직이는 신(娠)이다. 출산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그날부터 세 이레 동안인 삼칠일(三七日)까지 금줄을 친다. 우리 아버지는 손자를 다른 지역에서 낳았는데도 본가에 금줄을 쳤다. 금줄은 고목, 바위, 장독, 사당..

놋그릇(유기) / 집안 생활정도의 한 척도였던 유물

놋그릇(유기 鍮器) 집안 생활정도의 한 척도였던 유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맏이였던 나는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는 따로 주문하였지만 놋쇠로 된 밥그릇(주발)과 국그릇(대접)은 어머니가 물려주셨다.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쓰라고 어머니 것까지 같이 주셨다. 예전에 집에는 놋그릇이 많았다. 종류별 식기류는 물론이고, 주걱, 화로, 부젓가락, 요강, 촛대, 재떨이 등이 놋쇠로 만든 생활용품이었다. 감자를 긁던 놋숟가락은 반쯤 닳았고, 놋 국자는 들기가 무거웠고, 널마루 밑에 들어가도 떨어진 놋젓가락을 주을 수 있었다. 놋그릇은 연탄이 들어오면서 녹청이 생기고 변질되어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그릇 장사들이 다니며 스테인리스 그릇과 바꿔준다 하니 어머니는 집안에 있던 놋그릇을 다 ..

전보(電報)이야기 / 전보를 받아보셨나요?

전보(電報) 이야기 전보를 받아보셨나요? 전보(電報)는 이용자가 알리려는 내용을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여 문자로써 빠르게 수취인에게 배달하여 알리는 통신수단이다. 얼마 전 모임에 갔다가 전기, 전화, 전보 이런 것이 처음 들어오던 시절 얘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동행하였던 분이 전보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나도 학교를 졸업할 때, 그리고 아주 오래전 생일에 전보를 받아보았으니 참으로 오래된 일이었다. 그만큼 요즈음 거의 이용하지 않는 전신 도구이다. 옛날 앨범을 뒤져보면 학교 졸업 때 동생과 친구가 보낸 졸업 축하 전보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세월이 가니 이것이 기념물이 되었다. 아내에게 예전에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내 생일 축전을 보낸 얘기를 했더니, 그런 일을 내가 왜 했을..

풍로(손풍구) / 손으로 돌려서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풍로(손풍구) 손으로 돌려서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손으로 일으키는 바람을 장풍(掌風)이라 하는데, 도구로 일으키는 바람이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는 부채, 풍구(風具), 풍로(손풍구)가 있다. 풍구(豊具)는 곡물에 섞인 쭉정이, 겨, 먼지를 날려서 없애는데 쓰는 농기구가 있고, 대장간에서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아궁이에서 불을 지필 때는 풍로를 썼다. 풍로는 손으로 돌려서 불을 살리는 바람통이다. 불쏘시개에 불이 잘 안 붙을 때 불이 있는 쪽으로 풍로 구멍을 맞추고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이 나와서 불을 살릴 수 있다. 어렸을 때 큰집에 가면 외양간 앞 사랑방 아궁이에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소죽을 끓일 때 작두로 썬 볏짚과 등겨를 솥에 넣고서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이때 유용한..

추억에 안동역 /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추억에 안동역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2020.12.16 안동시 운흥동 옛 안동역에서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이제 열차를 이용하려면 송현동에 새로 지은 안동역으로 가야 한다. 안동역은 1930년 완공하여 이듬해부터 경북선 열차가 다녔고, 중앙선 열차가 안동을 통과한 것은 1940년이었으니 90년 세월을 이곳 사람들과 같이 하였던 곳이다. 도시가 커지면서 열차역이 바뀌는 경우는 가끔 봤지만, 나고 자라던 곳에 있던 역이 이사를 가니 내가 집을 옮긴 것처럼 남다르다. 열차가 안동으로 들어오면서 낙동강을 따라 달리던 중앙선이 직선으로 바뀌어 그것만으로도 소요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 안동으로 바로 오면 될 것을 일제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을 해코지하고자 돌아서 철도를 낸 것이다. 석..

절구와 디딜방아 / 손 방아와 발 방아

절구와 디딜방아 손 방아와 발 방아 옛날에는 집에서 절구를 찧거나 디딜방아를 찧어 음식을 해 먹었다. 절구는 절구통과 절구공이가 한 짝인데, 만든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 돌절구, 쇠절구가 있다. 절구는 곡물이나 양념을 절구통에 넣고 절구공이로 바수고 빻았다. 예전에 집에서는 메주를 쑬 때나 찰떡을 할 때 절구를 썼다. 메주는 원래 물기가 있어 절구공이에 콩이 잘 붙지 않는데, 찰떡은 찐득찐득하여 중간에 물을 묻히면서 찧었다. 가끔 양념을 빻을 때도 절구를 썼는데 쇠절구라 쿵덕쿵덕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단독주택이라 요즈음처럼 아파트 층간소음 같은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웃 간에도 절구 소리가 나면 무엇을 빻는구나 짐작을 할 뿐이었다. 절구보다 더 많이 빻을 수 있는 것이 디딜방아다. 절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