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세월 속으로 56

섶다리 / 떠내려 가면 또 놓아야 하는 다리

떠내려 가면 또 놓아야 하는 다리 섶다리 강을 건너 마을을 연결하는 섶다리는 섶나무(=작은 나무)로 엮어서 만든 다리인데 기억을 넘어 과거로부터 오고 과거로 가는 추억의 다리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되는 다리가 섶다리다. 이 다리로 장에 가고 이 다리로 학교에 가고, 이 다리로 정든 님이 오가고 애환이 가득한 다리다. 여름에 떠내려가면 다시 이어야 하는 다리. 마을을 이어주고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가끔 도회지 사람들이 찾아와 출렁출렁거리며 건너는 재미를 준다. 섶다리는 놓기가 어렵고 실속이 적어 점점 찾아보기가 어렵다. 섶다리를 놓자면 평평한 돌을 강둑에 다져놓고(선창 놓기라 함), 다릿발(섶다리의 지지대가 되는 Y자형 다리)을 박은 다음, 다릿발 사이를 이어주는 머기미( 긴 나무에 홈을 ..

연하장 / 아버지가 보낸 연하장

연하장 아버지가 보낸 연하장 며칠 전 오래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신 연하장 한 장이 나왔다. 새해가 다가와서 아버지께 연하장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아들한테 답서로 보낸 연하장이 오래된 편지뭉치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아버지 살아계실 때 설은 요즈음 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날 아침에 말 그대로 해(歲)를 맞는 절(拜)을 드리는데, 어른들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리는 분위기가 달랐다. 성주께 제를 올리고 나서 세배를 하기 위해 서 있으면,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은 어떻게 잡고 절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며, 절하고 나서는 어떻게 앉으며, 어른한테 드리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어른한테는 '과세 편히 하셨습니까' 하든지 그것이 어려우면 '새해 건강하십시..

바리깡 / 추억의 바리깡

바리깡 추억의 바리깡 이발기계인 바리깡(Bariquant)은 프랑스어이자 제조회사 이름이기도 하다. 얼핏 들으면 바리깡이 일본말로 오해하기 쉬운데, 우리말에 섞여 있어서 국적을 찾기가 어려운 말들이 꽤 있다. 빵과 덴뿌라(튀김)가 포루투갈어에서 왔듯이 말이다. 빡빡머리를 하고 다녔던 중고등학생 때 바리깡은 생활과 밀접하였다. 중학교 때 외가에 갔을 때, 큰외삼촌이 머리를 깎아준다 하여 머리를 내밀었다. 나무 손잡이로 된 골동품 바리깡으로 내 머리를 깎다가 기름을 덜 먹였는지 머리 꼭대기만 조금 남았을 때 바리깡이 머리카락을 물어뜯기만 하고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파서 눈물이 날 정도라 더 이상 안 깎겠다고 버텼더니 거울을 보여주었다. 정말 조금 남은 머리카락 모습이 가관이었다. 할 수 없이 다..

구공탄 / 애환의 땔감

구공탄 애환의 땔감 어릴 때 학교 다녀오면 해야 했던 일이 두멍(물독)에 물 길러 나르기, 방마루 청소와 마당 쓸기, 낙엽이 지면 가마니에 낙엽을 모으는 일이었다. 저녁때 연탄불을 가는 몫은 어머니가 대부분 하셨지만, 어떤 때는 어머니가 지시를 하거나 외출하실 때는 우리 몫이었다. 구공탄은 구멍이 아홉 개라서 구공탄이 아니고, 구멍은 19개였는데,십 구공탄이라 하니 어감이 좋지 않아 줄여서 구공탄이라 했다는 얘기이다. 그 뒤 구멍이 21개 25개 연탄이 생겼을 때는 '이십일 공탄' '이십오 공탄'이라 부른 것을 보면 어감이 나빠 줄였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구멍이 더 많은 연탄도 구공탄이라 불렀으니 구공탄은 구멍 뚫린 연탄의 통칭이 되었다. 연탄을 갈 때는 어느 정도 불기가 살아 있어야 새로 간 연탄..

문진(文鎭) / 아버지의 문진

문진(文鎭) 아버지의 문진 얼마 전 아버지 제사에 쓰라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제수용품 보따리를 풀다가 아버지가 쓰시던 문진(文鎭)이 나왔다. 문진(文鎭)을 서진(書鎭)이라고도 하는데, 책장이나 종이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누르던 물건을 이른다.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있는 문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 한테 가서 붓글씨를 익혔다. 아침마다 먹내가 방안에 가득하도록 벼루에 먹을 갈고 신문지 서너장에 빈 공간이 없어질 때까지 한자를 썼다. 습자시간에는 붓글씨를 쓰는데 종이가 얇은지 먹물이 많은지 책상까지 먹물이 배어나고 … 어릴 때 부터 한문을 배울 시간이 계속 있었지만 막상 요즘 벌어지는 일을 한자 사자성어로 쓸라치면 재대로 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배우기를 게을리한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