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
아버지가 보낸 연하장
며칠 전 오래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신 연하장 한 장이 나왔다. 새해가 다가와서 아버지께 연하장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서 아들한테 답서로 보낸 연하장이 오래된 편지뭉치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아버지 살아계실 때 설은 요즈음 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날 아침에 말 그대로 해(歲)를 맞는 절(拜)을 드리는데, 어른들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리는 분위기가 달랐다. 성주께 제를 올리고 나서 세배를 하기 위해 서 있으면,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은 어떻게 잡고 절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며, 절하고 나서는 어떻게 앉으며, 어른한테 드리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어른한테는 '과세 편히 하셨습니까' 하든지 그것이 어려우면 '새해 건강하십시오'하든지, 아니면 절만 넙죽 하라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할 수 있는 덕담이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이다. 여하튼 복(福)이라는 것이 왼쪽에 시(示)변은 제사상이요 오른쪽변은 술병이라, 제사상에술병이 많으면 부유하고 복이 많은 집안이었다.
세배를 드린 후 떡국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과 며느리들을 모두 불렀다. 토정비결 책을 펴고 한해의 운을 짚어 보며 해석해 주셨다. 때로 내용이 부정적인 것이 나오면 조심하고 근신하라고 일러주시고, 좋은 일이 나오면 안 되겠다 술 한 잔 받고 알려줘야겠다며 술상을 차려오도록 하였다. 설만 되면 토정비결을 보는 방법을 배워야겠는데 하고 늘 생각하였다. 아침 설겆이가 끝나면 편을 나눠 윷놀이판을 벌려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치며 집안이 들썩들썩하였다. 그때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었던 설 분위기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0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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