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경상 전라 탐방 75

울진 망양정(望洋亭) / 바다 풍경이 좋은 관동제일루

울진 망양정(望洋亭) 바다 풍경이 좋은 관동제일루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2024.9.17)  울진읍에서 망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을 가자면 바닷가 도로를 따라 최근에 만든 은어다리를 보며 내려간다. 망양해수욕장 바로 앞에 망양정이 있다. 바닷가에 울진관광안내도 옆 횟집이 들어선 사이에 계단길을 300m 정도 오르면 '바다를 보는 정자'란 이름을 가진 망양정(望洋亭)이다.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예로부터 이름난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혔다. '하늘 끝을 보지 못해 망양정에 오른 말이 /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로 시작하는 교과서에 나오는 송장 정철의 관동팔경은 익숙하다. 조선 후기에 숙종 임금은 강원도 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려오라 하였다.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본 숙종은 망..

울진 불영계곡과 불영사 / 백두대간 넘어 만나는 깊은 계곡과 절

울진 불영계곡과 불영사백두대간 넘어 만나는 깊은 계곡과 절  경북 봉화에서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노루재 터널을 빠져나오면 울진이다. 삼림이 울울창창하고 진귀한 물산이 많아 울진(鬱津)이라 하였다. 고개를 내려서면 길 양쪽으로 산등성이를 가르는 계곡이 깊다. 동해까지 장장 15㎞를 이어가는 불영계곡이다. 절벽 사이 기암괴석에 소나무가 터를 잡고, 그 아래로 계곡물이 구불구불 흐른다. 가히 물은 바위를 만나야 기이해진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봉우리를 감싸고돌아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을 이룬 곳이 불영사이다. 산과 물이 음양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지기(地氣)가 충만하고 생기(生氣)가 가득해진다는 형상이다. 이곳 명성도 그런 풍수적 해석으로 가치를 더한다. 주차장 앞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소나무가 호위하는..

예천 회룡포(回龍浦) /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回龍浦) 육지 속 섬마을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길국가명승 제16호     낙동강과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흐르는 예천에 회룡포가 있다. 회룡포는 용이 비상하듯 물이 휘돌아 가는 곳이라 붙인 이름이다. 봉화 물야 선달산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영주를 거쳐서 내려온다. 회룡포를 휘돌아 모래밭을 펼치며 산과 강이 태극 모양을 이룬다. 비룡산(飛龍山)에 이르러 물줄기는 산자락을 적시며 350도 돌아서 빠져나간다. 물줄기는 회룡포 바로 아래 삼강(三江)에서 금천(錦川)과 만나며 낙동강과 합수한다. 회룡포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나들목을 나와 안동 방면으로 가는 길에 회룡포 표지판이 나온다. 내비게이션에 회룡포나 회룡포전망대를 치면 회룡포쉼터가 있는 주차장 쪽이고, 회룡포마을을 치..

다산오솔길 /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⑫ 다산오솔길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020.1.14)   다산오솔길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 온 지 8년째인 1808년 외가 쪽 먼 친척뻘인 해남 윤 씨 윤단이 터를 잡아 주었다. 만덕산 아래 귤동마을에 있는 산정에 다산초당을 꾸몄다. 강진에 온 지 네 번째 거처이다. 정약용은 만덕산의 다른 이름인 다산(茶山)을 호로 삼았다. 다산초당 주차장에서 다산초당을 거쳐 백련사까지 걷는 길은 왕복 3.6㎞ 거리다. 길은 짧지만 아기자기하다.  다산초당 가는 길은 나무뿌리가 얼기설기 발을 뻗고, 나무는 우거져 대낮에도 그늘이 짙다. 초당 가는 길가에 무덤은 윤단의 손자이면서 다산의 제자였던 윤종진의 무덤이다. 동자석 2기가 앙증스러운 표정으로 ..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자취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⑪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자취 전남 해남군 (2020.1.14)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해남 윤 씨 어초은공파 녹우당 집안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 보물인 고화첩, 종가문적, 노비문서가 대표적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사람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와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이다. 공재는 고산의 증손자이고, 제사를 폐했다고 천주교 박해의 대상이 되어서 순교한 윤지충(尹持忠 1759-1791)은 공재의 증손자이다.  윤선도는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다. 양주에 별장이 있었는데, 홍수가 나도 별장이 있던 재산은 섬처럼 홀로 남아 사람들은 이 산을 고산(孤山)이라 했다. 지금은 남양주..

녹우당과 비자나무숲 / 해남 윤 씨 종가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⑩ 녹우당과 비자나무숲해남 윤 씨 종가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2020.1.14)  녹우당 (해남 윤 씨 종가). 은행나무는 1516년에 심었으니 500년이 넘었다   해남 가학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해남 윤 씨 종가 녹우당으로 향했다.  해남읍에서 대흥사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길 왼쪽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 간판이 보인다. 너른 들판에 간판이 없다면 그 안에 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綠雨堂)인데, 집 뒷산에 우거진 숲이 바람에 흔들리면 쏴 하고 푸른 비가 내린 듯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하자 왕세자 때 사부였던 고산 윤선도(1587-1671)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주었다. 효종이 죽자 윤선도는 고..

영랑생가 /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⑨ 영랑생가'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 전남 강진군 남성리 (2020.1.13)     영랑생가  / 전남 강진   영랑생가는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이자 항일 민족지사인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생가다. 강진군청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영랑생가가 보인다. 강진 사람들은 영랑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영랑 슈퍼, 영랑 설비 등등, 곳곳에 영랑이 들어가는 이름이 남아 있다. 영랑생가에 들어서면 큰 은행나무가 있고, 겨울이라 앞마당에 모란은 지고 없고, 바로 옆에 그의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가 서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매끄럽고 세련된 시어이고, 그 선은 굵고 강렬하다. 안채로 들어가면 ..

사의재 / 다산 정약용 강진 첫 유배지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⑧ 사의재(四宜齋) 다산 정약용 강진 첫 유배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2020.1.13)    다산 정약용은 사학(邪學. 천주교)에 물든 죄인이라는 죄명으로 강진에 유배되었다. 그때가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한 1801년이었다.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조카사위인 황사영 백사 사건에 연루되었다 하여 한양으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았으나 혐의가 없자 강진으로 유배된 것이다. 아무도 그를 죄인이라고 상대하지 않으려 했는데, 강진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방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그 집이 다산의 강진 첫 유배지가 된 것이다. 그 뒤 1805년에는 강진읍 보은산 고성암의 보은산방으로, 다시 1806년 가을에는 이학래의집으로, 1808년에는 귤동마을 다산초당으로 옮겼다. ..

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의 그 마량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⑥ 마량에 가서이재무의 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의 그 마량 전남 강진군 마량면 (2020.1.12)   마량포구 / 전남 강진군 마량면    '좋겠다, 마량에 가면'이란 이재무의 시가 있다. '몰래 숨겨 놓은 애인 데불고 /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며' 하는 글로 시작한다. 누구는 이 글을 로망이라 말하고, 누구는 아주 가지 않으니 다행이라 그런다. 로망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글에 녹아 있다. 다음 구절은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 누워'로 이어진다. 강진까지 갔으니, 마량이 궁금하여 마량에 갔다. 마량은..

대구면 고려청자 가마터 / 고려청자 생산 중심지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⑤ 대구면 고려청자 가마터고려청자 생산 중심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2020.1.12)     고려청자는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에는 400여 기의 옛 가마터가 있는데, 강진군 대구면 부근에만 180여 기가 있다. 이곳은 고려청자 생산 중심지요, 관요가 모여 있어서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상감청자들은 이곳에서 생산한 것이 많다.  고려청자는 철분이 섞인 흙으로 그릇을 빚고, 거기에 유약을 발라 구워서 유약 속에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한다. 이곳에 가마터가 많이 들어선 이유가 있었다. 우선 주변에서 도자기 흙이 풍부하고, 산에서 땔감을 구하기 쉬우며, 가마를 만들만한 적당한 경사가 있는 언덕이 있고, 제품을 운반하는 뱃길이 가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