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남도탐방 ⑧
장도 청해진 유적
장보고의 해상권 장악의 본진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2025.2.19)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앞바다에 달도를 거쳐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사이에는 완도대교가 놓여 있다. 완도는 이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건너서 완도항으로 가는 동쪽에 장도(將島) 청해진 유적이 있다. 완도 본섬인 장좌리에서 장도 사이 거리는 180m이다. 예전에는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야 건너갈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다리가 있다.
장도는 9세기 신라 때 장보고( ~846)의 청해진이 있던 곳이다. 장보고는 우리나라 서남 해안과 중국과 일본의 해역까지 세력을 펴서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무술로 인정을 받아 장군이 되었는데, 신라인들이 노예로 팔려오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껴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신라로 돌아왔다. 그는 왕에게 가서 남해 교통 요지인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뿌리 뽑고 무역로를 보호할 것을 주장하여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었다. 청해진이 해상권 장악의 본진이라면 신라방이 있던 당나라 산둥반도 적산포는 중국 쪽의 거점이었다. 그 후 왕위 계승과 권력 다툼에 휘말려 청해진이 생긴 지 13년 만인 문성왕 8년(846년) 한때 부하였던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5년 후(851년) 청해진은 폐쇄되었고, 주민은 벽골군(지금의 김제)으로 강제 집단이주되었다.
유적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장도로 건너갔다. 섬은 그렇게 크지는 않으며 그릇을 엎어놓은 듯 오뚝하다. 완도 본섬에서 장도를 건널 때 바다 사이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외성문 앞에 가서야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성의 구조가 외성문 앞 우물을 보호하고 바깥을 조망하도록 만들었다. 오랫동안 역사 뒤에 묻혀 주민들의 농사터로 쓰다가,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목책이 드러나며 유물조사를 시작하였다. 방사선탄소 연대 측정으로 9세기에 만든 참나무 목책임을 확인하였다. 고대(高臺)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대는 연안의 상선과 해적을 감시하던 곳이었다. 앉음새가 좋아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장도 유적지는 역사상 의미가 있다. 힘이 있으면 길목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치는 유의미한 곳이 되는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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