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2025/02 12

장도 청해진 유적 / 장보고의 해상권 장악의 본진

2025 남도탐방 ⑧ 장도 청해진 유적장보고의 해상권 장악의 본진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2025.2.19)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앞바다에 달도를 거쳐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사이에는 완도대교가 놓여 있다. 완도는 이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건너서 완도항으로 가는 동쪽에 장도(將島) 청해진 유적이 있다. 완도 본섬인 장좌리에서 장도 사이 거리는 180m이다. 예전에는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야 건너갈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다리가 있다.  장도는 9세기 신라 때 장보고( ~846)의 청해진이 있던 곳이다.  장보고는 우리나라 서남 해안과 중국과 일본의 해역까지 세력을 펴서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무술로 인정을 받아 장군이 되었는데, 신라인들이 노예..

느림의 섬 청산도(靑山島)

2025 남도탐방 ⑦ 느림의 섬 청산도(靑山島) 전남 완도군 청산면도청항 - 서편제길 - 고인돌 - 다랭이길 - 신흥해수욕장 - 성서돌담마을이동거리 11.1㎞. 이동거리 3:40. 휴식시간 1:25. 계 5:05  (2025.2.19. 맑음. -1.2~5.4℃)   ※ 청산도 : 완도항에서 뱃길 19.2㎞ (50분). 면적 33.28㎢. 해안선 길이 42㎞. 인구 2200명       청산도는 1993년 상영한 영화 '서편제'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판소리를 매개로 하여 한을 영상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장구를 치고 어깨춤을 추는 장면이 생각난다. 푸른 밭이 있고 다랭이 논이 있었다. 그 청산도를 가려 완도로 갔다. 날은 풀렸지만 연일 바람이 8~9m/s 정도로 불어 배를 탈 수 있을지는 알 수..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 / 해남 대둔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

2025 남도탐방 ⑥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9)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해남 대둔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천연기념물 제173호해남 남산면 구림리 산 24-4 (2025.2.18)       벚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전국에서 벚꽃이 필 때면 언론에서 다투어 꽃 피는 시기를 알린다. 벚꽃 구경은 일제강점기 이후이지 싶다. 소한부터 곡우까지 8개 절기에 꽃소식을 알리는 24개 화신풍(花信風)이 있는데, 거기에 벚꽃은 없다. 중국에 당송 시인들도 벚꽃을 노래한 시인은 없다. 벚꽃 문화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려나 조선시대에 벚꽃이 문학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1962년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인 것이 알려지면서 벚나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벚꽃이 국화이지만..

해남 녹우당 비자나무숲 / 해남 윤 씨 종가 뒷산에 가꾼 숲

2025 남도 탐방 ⑤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8) 해남 녹우당 비자나무숲해남 윤 씨 종가 뒷산에 가꾼 숲천연기념물 제241호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산 27-1 (2025.2.18)      해남읍 연동리에 해남 윤 씨 어초은 공파의 종가가 있다. 입향조 어초은 윤효정(1467-1543)은 이곳에 처음 터전을 잡았다. 기왕에 있던 집에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효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사랑채를 옮겨와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고산의 증손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1668-1715)이다. 공재는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기도 하다. 공재의 절친인 옥동 이서가 해남 연동에 머물렀다. 빗소리인 줄 알고 잠에서 깨어보니 나뭇잎 소리였다. 옥동은 '푸른 비가 내린다'는 뜻의 녹우당(錄雨堂)이란 당호를 ..

해남 성내리 수성송(곰솔) / 왜적을 물리친 기념으로 심은 나무

2025 남도 탐방 ④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7)  해남 성내리 수성송(곰솔)왜적을 물리친 기념으로 심은 나무천연기념물 제430호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4 (2025.2.18)      남부지방으로 가면 소나무와 비슷한 곰솔을 볼 수 있다. 곰솔과 소나무는 겉모습이 비슷하고 바늘잎도 2개씩 모여 나기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곰솔 잎은 소나무보다 억세고 크다. 곰솔은 바닷바람이 싣고 오는 소금을 잘 견디어 중부이남 해안과 연안에 분포한다. 줄기가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하며, 해안과 섬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서 해송(海松)이라고 한다. 소나무껍질은 적갈색인데 곰솔껍질은 검은빛에 가깝다. 곰솔은 '검은 소나무'란 뜻을 가진 '검솔'에서 온 것으로 추정한다. 소나무와 곰솔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 월출산 아래 마을수호목

2025 남도 탐방 ③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6)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월출산 아래 마을수호목천연기념물 제283호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747-2 ( 2025.2.18)     느티나무는 큰 마을이면 정자나무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 정자나무로 쓰고,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느티나무란 이름은 훈몽자회에 누튀나무로 표기하였다가, 느틔나무, 느티나무가 되었다. 누는 누렇다(黃)는 뜻이다. 같은 과인 느릅나무에 비해 노란색이 강하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한마디로 느티나무는 '누런색을 띤 나무'란 뜻이다.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는 나주역에서 해남 쪽으로 31㎞ 정도 가면 있다. 월출산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느티나무가 있는 군서면 월곡리에 가까..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 임진왜란 후 심은 가장 큰 호랑가시나무

2025 남도 탐방 ②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임진왜란 후 심은 가장 큰 호랑가시나무천연기념물 제516호나주시 공상면 상방리 469-2 (2025.2.18)      호랑가시나무 잎은 오각형 또는 육각형인데 모서리마다 가시가 튀어나와 있다. 잎은 두툼하고 가시는 단단하고 날카롭다. 호랑가시나무는 잎에 난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날카로워서 붙인 이름이다. 등을 긁기 좋다고 하여 '등긁기나무'라고도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르던 예수에게 씌운 가시관이 호랑가시나무 잎이었다고 한다.  나주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호랑가시나무를 보러 공상면 상방리로 갔다. 나주역에서는 15㎞ 이고, 금사정 동백나무에서는 6㎞ 떨어져 있다. 상구마을회관 앞에 잘 생긴 호랑가시나무가 서 있다..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 조광조를 따르던 유생들이 심은 나무

2025 남도 탐방 ①남부지방에서 사는 식물 (4)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조광조를 따르던 유생들이 심은 나무천연기념물 제515호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130 (2025.2.18)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죽고 개혁세력 선비들은 숙청되었다. 조광조를 따르던 개혁 세력 중에서 나주가 고향인 유생 11명은 금강계(錦江禊)를 조직하였다. 영산강 아래 터에 정자를 짓고 금사정(錦社亭)이라 하고, 그 앞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세상이 변해도 사철 푸른 동백나무처럼 이루고자 했던 뜻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백나무 한 그루만 남았다.  용산역에서 새벽에 떠나는 KTX열차를 타고 나주로 갔다. 나주역..

우수(雨水) 뒤 얼음같이

말속에 자연 41 우수(雨水) 뒤 얼음같이   우수(雨水)는 입춘(立春) 다음에 오는 새해 두 번째 절기다. 날짜로는 양력 2월 19일 경이다. 우수는 얼음이 녹고 싹이 트는 때이다. 우수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물이 많아진다는 의미를 가졌다. 땅을 갈아야 할 시기에 물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수 무렵부터 날씨가 서서히 따뜻해지고 만물은 소생할 준비를 한다.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려 물고기가 올라오고, 기러기는 추운 곳을 찾아 날아가며, 초목은 싹이 트기 시작한다.       우수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강에 얼음은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 그래서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라고 한다. 제아무리 추워도 우수 경칩이 지나면 누그러진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이다. '우수 뒤 얼음같이'란 속담이 있다..

심심풀이 땅콩

말속에 자연 40  심심풀이 땅콩   땅콩은 땅과 콩이 어우러진 말인데, 콩처럼 생긴 과실이 땅속에서 생겼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남미를 탐사하던 유럽인들이 안데스산맥 동쪽에서 4천 년 전부터 재배하던 땅콩을 발견하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것을 알고 가져와서 재배하였다. 지금은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가 생산과 소비에서 1,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 정조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간 이덕무가 소개하였으나 지금의 땅콩은 1836년 중국에서 들여왔다.  정월 대보름에 견과류와 더불어 땅콩을 부럼으로 깨문다. 전래의 부럼은 밤, 호두, 잣, 은행이었다. 최남선이 1930년대에 쓴 글을 보면 요즈음 땅콩을 부럼으로 쓰기도 한다고 썼다. 우리가 실제 땅콩을 먹기 시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