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시(詩) 산책 12

조오현의 시 ' 내 울음소리' 외

조오현의 시 '내 울음소리' 외 한 해가 가고 다른 한 해가 왔다. 지난해 달력을 치우려고 하였더니, 아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오린 자리 밑에 몇 편의 글이 있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의 시였다. 스님은 설악산 절에서 살면서 마음에 닿는 선시 수 편을 남겼다. '아득한 성자'에서는 '하루'에 담긴 영원을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 아득바득 살기만 한다면 과연 하루라도 제대로 산 것이냐고 묻고, 본인이 죽은 후 '눈먼 뻐국새의 슬픔이라도 자아낼까'라며 채찍질하였다. 부지런히 자신을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물거품을 보지 말고 넓은 바다를 보라는 말씀이다. 동해 / 강원도 동해 내 울음소리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

조오현의 시 '아득한 성자' 외

조오현의 시 '아득한 성자' 외  조오현시인이 2018.5.26 돌아가셨다. 설악산 절에서 지내고 시를 읊었던 선승이셨다.만해를 알린 시인스님이셨다. "항상 진리에 배고파하고, 어리석어라" 하시며 아름다운 선시를 남겼다. '밤하늘 먼 바다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천경(千經)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라 하였다. 그의 시가 좋아서 몇 수를 적어서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훌륭한 선승 시인이 그의 법명 무산(霧山)처럼 홀연히 가셨다.     설악산 수렴동계곡 (2011.8.4)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

김종길 시 '성탄제' 외

김종길 시'성탄제' 외 김종길 시인이 어제 2017.4.1 돌아가셨다. 그는 1926년 안동시 임동면 지례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에는 유가적인 분위기에다가, 서구의 이미지가 묻어있다. 처음 발표한 시 '성탄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려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밖에도 '하회에서','춘니', '설날 아침에', '가을' 등 귀에 익숙한 시들이 있다. 그의 시에는 가족에 대한 정이 묻어나고, 고향 냄새가 난다. 그의 시는 한해가 오가는 겨울에 읽는다면 감흥이 더 난다.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남기고 꽃이 피는 봄날 또 한 분 훌륭한 시인이 가셨다. 성탄제(聖誕祭)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

가을이 있는 옛시조

가을이 있는 옛시조 억새 / 북배산 (경기도 가평. 2008.10.4) 쓰르라미 새벽에 선탈했는지 그 허물 청산 속에 남겨뒀기에 초동이 주워온 걸 바라봤더니 온 세상에 가을바람 일어나더라 - 황오(1816~1863), 쓰르라미 껍질 시골집이 조그맣게 밭 사이 있어 감, 대추와 밤나무로 둘리어 있네 서릿바람 불어와 무르 익으니 말과 소의 눈에는 온통 붉은 빛 - 황오, 농가의 이런저런 일을 읊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였는가 아마도 오상고절(傲霜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 이정보, 국화

술이 있는 옛시조 1

술이 있는 옛시조 1  10월 네번째주 목요일은 막걸리 날로 정했다고 한다. 기념하는 날도 많은데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 얘기다. 2011.10.27(목요일)은 첫번째 생긴 막걸리 날이다. 막걸리는 삼국시대 이전 벼농사가 이루어진 때에 빚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막'은 '함부로' 또는 '마구'라는 뜻이고, '걸이'는 '거르다'는 뜻이니 막걸리는 마구 거른 술이다.     단원 김홍도 「주막」        짚방석 내지 말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혀지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박주 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 한호(韓濩)        천지로 이불로 삼고   강하로 술연못을 만들어   천 일 동안 계속 마셔서   취한 채 태평시절을 보내리라..

경허선사 선시 '우연한 노래'

경허(鏡虛)선사 선시      우연한 노래(偶吟)   노을 비낀 절 안에서무릎을 안고 한가로이 졸다가소소한 가을바람 소리에 놀라 깨보니서리친 단풍잎만 뜰에 가득해 시끄러움이 오히려 고요함인데요란하다 해도 어찌 잠이 안 오랴고요한 밤 텅 빈 산 달이여그 광명으로 한바탕 베개하였네 일 없음이 오히려 할 일이거늘사립문 밀치고 졸다가 보니 그윽히 새들은 내 고독함을 알아차리고창 앞을 그림자 되어 아른대며 스쳐가네 깊고 고요한 곳 이 산에서구름을 베개하여 졸고 있는 내 행색에헤라 좋을시고 그 가운데 취미를미친 온 세상에 놓아두어라. 일은 있는데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나른해지면 이내 잠을 잘 뿐이다.예부터 전해오는 이 글귀는 오직 이 문 앞에만 있을 뿐이다.           졸음(睡眠)  머리 숙이고 항상 조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