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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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안동 탐방 35

봉정사(鳳停寺) / 최고(最古) 목조건물, 세계문화유산

봉정사(鳳停寺) 4 최고(最古) 목조건물, 세계문화유산 경북 안동시 서후면 (2024.2.18) 봉정사로 가는 시티투어 버스 뒷면에 '왔니껴"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오셨습니까'란 뜻인 니껴형의 안동말이다. 투박하게 툭 던지듯 무심한 듯하면서 나름의 인정이 배어있는 말투다. 버스는 팔도성주의 본향 제비원을 지나친다. 공식 명칭은 '안동 이천동(泥川洞) 석불'인데, 제비원 미륵불로 통한다. 지나며 힐끗 봐도 부드러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흐르는 불상이다. 저전동(苧田洞)을 돌아 봉정사가 있는 길로 들어섰다. 이곳 할배 할매들은 저전동을 모시밭이라 부른다. 한자 표기를 두고 한글로 부르는 지명이 마음을 끈다. 모시밭골을 지나면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이다. 봉정사는 앉은 지세가 봉황이 머물러 앉..

안동 선비순례길 2. 동부리 ~퇴계종택 ~ 단천교

안동 선비순례길 2. 동부리 ~ 퇴계종택 ~ 단천교 2코스 도산서원 길 일부 (동부리~퇴계 종택), 3코스 청포도 길 (퇴계 종택~단천교) 동부리 - 분천리 마을회관 - 도산서원 - 퇴계 종택 - 이육사 문학관 - 단천리 - 단천교 - 뒷재 이동거리 11.9㎞. 이동시간 3:16 휴식시간 0:04. 계 3:20 (2022.11.17. 맑음. 0.0~15.4℃) 선비순례길 두 번째 길은 도산면 동부리 입구에서 출발하여 퇴계종택 방향으로 갔다. 첫 마을은 분천(汾川)이다. 이곳 사람들은 부내라 부른다. 낙동 강물이 부내 앞 벼랑에서 부딪혀 휘어가며 큰 물보라를 일으킨다고 분천이다. 부내에는 퇴계가 존경하며 지내던 고향 선배 농암 이현보가 있었다. 농암은 부내 절벽에 물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를 멀게 할..

안동 선비순례길 1. 오천유적지 ~ 월천서당 ~ 동부리

안동 선비순례길 1. 오천유적지 ~ 월천서당 ~ 동부리 1코스 선성현길(오천유적지~월천서당), 2코스 도산서원길 일부 (월천서당~동부리) 오천유적지 - 역동선생 유허비 - 예안교 -보광사 - 선성현 문화단지 - 선성수상길 - 한국문화테마파크 -월천서당 - 안동호반 자연휴양림 - 동부리 이동거리 17.2㎞. 이동시간 5:46. 휴식시간 0:12. 계 5:58 (2022.11.16. 맑음. 1.0~14.0℃) 안동은 넓기도 하지만 갈 곳도 많다. 9개 구간 모두 91㎞를 걷는 선비순례길이 있다. 1구간 선성현길로 가기 위해 오천 1리 버스정거장에서 내리니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다. 2개 댐이 생긴 후 생긴 현상이다. 마을로 흐르는 내(川)에 돌이 검게 보여 오천(烏川)인데, 안개에 가려 그것은 볼 수도 없다..

아름다운 암자 영산암

안동 탐방 아름다운 암자, 영산암(靈山庵) 경북 안동시 서후면 영산암은 봉정사 동북쪽 개울 건너에 있는 암자다. 영산암은 봉정사만 구경하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거리로는 100m 밖에 안 되는 곳에 있다. 6개 작은 건물이 ㅁ자로 둘러 싸여 있는데, 송암당 누마루 공간이 있고 우화루가 벽체를 없애서 바깥으로 하늘을 열어서 그 폐쇄성을 상쇄하고 있다. 우화(雨花)는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말씀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여러 절에서 그 현판을 찾아볼 수 있다. 영산암은 한국의 10대 정원에 선정되었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가 가끔 부채나 그림에서 만나는 달마대사는 인도 승려로 중국에 건너가 소림동굴에서 9년간 ..

봉정사 / 아름답고 조화로운 절집

안동 탐방 봉정사(鳳停寺) 3 아름답고 조화로운 절집 경북 안동시 서후면 (2018.8.2)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절 앞 풀밭에 서니 볕이 따갑다. 계곡에 물과 하늘의 바람도 자고 가는 모양이다. 더위에 봉정사를 찾았다. 봉정사는 2018년 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개 절 중 하나다. 1천 년 넘게 신앙 수도생활의 불교문화를 계승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 그 등재 사유이다. 봉정사는 안동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절이다.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지은 작은 절집 건축물이다. 극락정토를 축소해 놓은 곳이 극락전인데, 극락세계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대웅전도 건축 시기가 조금 늦었을 뿐 역시 오래된 건축물이며,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조선 초중기에..

묵계서원,묵계종택,만휴정 / 우리 집에 보물은 청백이다

우리 집에 보물은 청백이다 묵계서원, 묵계종택, 만휴정 경북 안동시 길안면 충효로 1736-5 (묵계 1리) (2016.4.24)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묵계로 문화탐방을 나섰다. 안동시내를 벗어나자 사과나무꽃으로 들판이 하얗다. 안동은 목조건물의 보고다. 안동에서 이름난 목조건축을 다 볼라치면 일주일이 빠듯하다는 얘기가 있다. 가문마다 종택,재실,서원을 갖추어 후손들이 정성으로 잘 모시고 있어 고맙게도 귀중한 답사처가 되었다. 묵계서원은 조선초 명신 응계(凝溪) 옥고(玉沽. 1382~1436)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21) 두 분을 배향한 서원으로, 외진 곳에 있다. 지금도 이곳은 외져서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 이 궁벽한 산골에 자리를 잡은 입향조가 안동 김 씨 보백당 김계..

안동 가을여행 9 / 퇴계오솔길 '예던길' 한속담

2015 안동 가을여행 9 퇴계오솔길 '예던길' 한속담 안동시 도산면 (2015.10.25) 퇴계 묘소에서 언덕바지 아스팔트 길을 넘어가면 이육사문학관이 나온다. 이곳 원천리가 그가 나고 자라며 도산 보통학교를 다닌 곳이다. 이육사의 글과 유품은 물론 이육사와 소식을 나누었던 분들의 육필 편지가 그곳에 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으로 이육사 5형제 중 3형제가 연좌되어 혹독한 형을 받았다. 그는 북경대 졸업 후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 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하였고, 독립운동에 본격 가담하여 17차례 투옥되었으며,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의 기개가 나타난다. 이육사문학관에 가면 가슴 서늘한 그 기개를 느낄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왕모산성이..

안동 가을여행 8 / 퇴계태실, 퇴계종택, 퇴계묘소

2015 안동 가을여행 8 퇴계태실, 퇴계종택, 퇴계묘소 안동시 도산면 일원 (2015.10.25) 도산서원을 나와 퇴계의 발자취가 있는 장소들을 찾았다. 퇴계태실은 퇴계가 태어난 곳으로, 진성이 씨 온혜파 종가이다. 온혜초등학교 입구를 지나면 온혜종택이 있고, 퇴계태실은 길을 따라 서편으로 조금 더 가면 있다. 온혜는 온천이 있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기에 붙은 이름이다. 퇴계태실이 있는 노송정고택은 퇴계할아버지 호가 노송정(老松亭)인데, 당시에 온돌이 일반화되지 않은 때인데, 별도로 온돌방을 놓느라 방이 툭 튀어나왔다. 그 방 앞에는 '퇴계선생태실'이라고 현판을 붙여놓았다. 퇴계는 여기서 나서 사랑채에서 할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정성이 듬뿍 묻어있는 자랑스러운 집이다. 퇴계태실에서 나..

안동 가을여행 7 / 도산서원

2015 안동 가을여행 7 도산서원 / 한국정신문화의 중심지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2015.10.25) 석주 이상룡선생 생가인 임청각에 들른 후 안동댐 옆을 지나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중간에 오천리 군자마을의 아름다운 한옥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지난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6만 4천여장의 유교장판과 징비록이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있으나 처음부터 시간이 부족하여 제외하였다. 도산서원 가는 옛 예안길은 낙동강을 따라가는 멋들어진 길이었는데, 안동댐이 생긴 이후 산길로 가게 되어 그 멋들어진 정취를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도산서원은 도산 남쪽에 있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퇴계 생전(57세. 1557년)에 터를 잡고, 61세에 완공하였는데, 그 때는 공부방인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

안동 가을여행 6 / 임청각

2015 안동 가을여행 6 임청각 (臨淸閣) / 가장 오래된 가옥, 석주 이상룡선생 생가 안동시 법흥동 (2015.10.25) 임청각은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옛집이다. 고성이씨 종택이며,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상해임시정부가 대통령제였다가 의회주의제로 바꾸면서 그 수반이 국무령이다. 그 전에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에 전 재산을 바친 집안이다. 이 집에서 난 독립투사만 12명이 넘는다. 나라가 어려울 때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가이다. 당초 99칸 집이었으나 일제가 철도를 부설하면서 독립투사의 집을 헐기 위해서 일부러 먼 거리로 둘러 놓으며 이 집을 반이나 헐었다. 집안은 독립운동에 수없이 죽고 풍비박산이 났다. 그러나 나라의 지원이 없어 자식들은 학교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