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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안동 탐방

안동 선비순례길 2. 동부리 ~퇴계종택 ~ 단천교

향곡[鄕谷] 2022. 11. 21. 10:39

안동 선비순례길 2. 동부리 ~ 퇴계종택 ~ 단천교

2코스 도산서원 길 일부 (동부리~퇴계 종택), 3코스 청포도 길 (퇴계 종택~단천교)

 

동부리 - 분천리 마을회관 - 도산서원 - 퇴계 종택 -  이육사 문학관 - 단천리 - 단천교 - 뒷재

이동거리 11.9㎞. 이동시간 3:16 휴식시간 0:04. 계 3:20 (2022.11.17. 맑음. 0.0~15.4℃)

 

 

 

안동 선비순례길. 동부리-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단천교

 

 

 

선비순례길 두 번째 길은 도산면 동부리 입구에서 출발하여 퇴계종택 방향으로 갔다. 첫 마을은 분천(汾川)이다. 이곳 사람들은 부내라 부른다. 낙동 강물이 부내 앞 벼랑에서 부딪혀 휘어가며 큰 물보라를 일으킨다고 분천이다. 부내에는 퇴계가 존경하며 지내던 고향 선배 농암 이현보가 있었다. 농암은 부내 절벽에 물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를 멀게 할 정도라 그 바위를 농암(聾巖) 즉 '귀머거리 바위'라 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농암은 벼슬을 마치고 고향 부내로 돌아왔다. 돌아와 농암가를 지었으니 도산서원 입구에 농암가 비(聾巖歌 碑)가 있다.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老眼)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 인간사 변한 들 산천이야 변할까 /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 그리고 유명한 어부가가 있다. 그는 우리 강호 문학을 열었던 선도자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을 것이라던 산천은 나중에 수몰이 되어 농암종택은 도산 북쪽 가송리로 옮겼다.

 

농암가 비를 지나면 마른 단풍이 늘어선 도산서원 숲길이다. 강 아래로 시사단(試士壇)이 보인다. 말 그대로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던 곳이다. 극심한 탕평책을 보완하고 퇴계의 학덕을 기리고자 정조가 이곳에서 도산 별과를 보게 하였다. 과거에 응시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서 서원 마당에 수용하기 힘들자 서원 앞 벌판에서 시험을 보게 하였다. 나중에 정조의 명에 따라 시험 본 곳을 기념하여 시사단을 만들었고, 댐을 만들면서 수몰이 될 수 있어 그 높이를 올려 개축하였다. 서원 앞에는 퇴계가 손님을 맞고 배웅하던 석간대(石澗臺)가 있다. 제자를 배웅하며 전한 당나라 시인 유상의 시귀에 '그리워 만나려면 물가로 다시 오리' 라는 글이 있다. 그만큼 퇴계는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하였다. 퇴계의 사상은 선한 마음을 간직하여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본성과 기질이 물 흐르듯 하였다.

 

내가 어려서 도산서원에 갈 때는 서원 앞이 벌판이어서 안동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다. 수몰로 벌판은 물에 잠겨 지금은 가는 길이 산골 길이 되었다. 도산서원 뒤쪽으로 퇴계종택으로 가는 5리 오솔길이 있다. 능선에 오르니 쉼터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라(愼其獨. 신기독)'는 글귀가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매사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라는 말이다. 오솔길을 내려서면 선비문화 수련원이고, 퇴계종택은 바로 아래에 있다. 사랑채 현판 '秋月寒水亭(추월 한수정)'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 달처럼 맑고, 찬 강물처럼 투철한 현인다운 행동을 하라'는 말이다. 몇 년 전 갔을 때  종손 이근필 선생님께서  '義在正我(의재 정아)'라 쓴 글씨를 주셨다. '사람이 나아갈 길은 나를 바르게 하는 일이다' 란 뜻이다. 오늘은 인기척이 없으시다. 발길을 돌려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하였다. 토계리 밭에는 배추를 거두는 농부들 손길이 바쁘다. 퇴계 묘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걷는다.

 

수졸당에서 오르는 고개를 넘으면 넓은 들 너머로 강물이 흐르고 멀리 왕모산이 우뚝하다. 이곳이 육사 이원록이 태어난 원천리이다. 이육사는 이곳 원천에서  광야의 시상을 가다듬었다. '끊임없는 광음을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그는 이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되리라 다짐하며 독립을 갈구하였다. 그는 북경대 졸업 후 의열단에서 설립한 군사정치학부 1기생으로 들어가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7차례 투옥되었고, 해방을 한해 앞두고 41세에 북경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육사의 외조부는 항일의병장이었고, 육사는 퇴계의 14대손이다. 저항과 문학의 피는 부모 집안에서 받은 것이었다. 이육사 문학관엔 육사의 원고와 유품이 남아 있다. 육사를 회상하는 영상이 끝나면 커튼이 열리며 광야가 눈앞에 나타난다. 고향 마을 원촌은 단출하지만 기품이 있고, 들은 넓고 아름답다. 청포도 시비공원을 지나 왕모산 앞 단천리를 돌아 목적지인 단천교로 갔다. 단천교는 퇴계오솔길인 예던길로 이어진다. 예던길은 학소대를 거쳐 농암종택으로 가는 그림 같은 길이다. 건너편 왕모산성길도 또 다른 그림이다. 모두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걸은 길은 포장도로가 많았다. 도로가 걷기에 편하지는 않지만 복잡한 곳은 아니라 걸을만하였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누가 차를 세우고 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여유가 있으셨다. 온혜까지 자리를 얻었다. 퇴계 후손인 이곳 이장님이시다. 종손 어른 근력을 물었더니 귀가 어두운 것은 알지만 활동이 여전하시다는 말씀이다. 종택에서 뵙지 못한 어른의 소식을 차 안에 들었다. 옷깃 한번 스치는 것은 오백겁의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라는데, 고마운 인연이다. 세상의 인연이 이유없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착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바르고 순리대로 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가도 만난다는데 또 인연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길을 걸으며 또 배운다. 

 

 

※ 교통편

(갈 때) 안동 북문시장에서 8:30 (안동역 8:15 출발) 급행 3번 버스를 타고, 9시 이일영공군중위상 정거장 도착

(올 떄)  뒷재에서 14시에 512번. 이육사문학관에서 14시 급행 3번 버스가 있다. 

 

※ 길 안내

① 이일영공군중위상 정거장에서 5분여 걸으면 동부리 입구이고, 길을 건너 119 소방센터 쪽으로 간다

② 산림과학박물관에서 고개를 넘으면 분천리이고, 오른쪽 마을회관이 있는 길이 퇴계종택 방향이다

③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산 방향에서 오른쪽 길이 퇴계종택 가는 오솔길이다

④ 이육사문학관에서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뒷재 정거장에서 오른쪽 큰길(왕모산성 표시)이 단천리 방향이다

⑤ 단천리마을회관을 보며 왼쪽 작은 포장길이 단천교 가는 길이며, 단천교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어 나오면 뒷재이다.  

 

 

 

분천마을회관을 지나 퇴계종택 가는 길

 

 

분천리 마을을 벗어나면 오솔길로 들어선다

 

 

농암 이현보의 농암가 비

 

 

농암가 비를 지나면 시사단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도산별과가 있었던 자리에 세운 시사단

 

 

퇴계가 손님을 모셨거나 배웅하였던 장소 석간대

 

 

퇴계가 농암을 모셨던 감회를 적은 글

 

 

퇴계가 제자를 전송하며 적어주었다는 당나라 시인 유상의 시

 

 

퇴계 종택

 

 

퇴계 종택 사랑채 추월한수정

 

 

토계마을 성황당

 

 

퇴계 묘소

 

 

원천리 들판. 앞산은 왕모산 줄기

 

 

이육사 문학관. 이육사 묘소는 뒷산에 있다

 

 

이육사 고향 원천

 

 

단천리

 

 

단천리 앞 왕모산(648m)

 

 

왕모산 가는길

 

 

오늘 목적지 단천교. 앞산은 건지산(555.7m)

 

 

단천교는 3코스 종착점이요, 4코스 예던길과 5코스 왕모산성길로 가는 시작점이요 종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