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문화 테마 27

뒷간 / 뒤를 보아 뒷간, 뒤에 있어 뒷간

뒷간 뒤를 보아 뒷간, 뒤에 있어 뒷간 뒷간은 똥이나 오줌을 누는 곳으로 변소의 우리말이다. 뒤를 보아 뒷간이고, 뒤에 있어 뒷간이다. 측간(厠間)은 집옆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는 뒷간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상류 사회에서는 측간으로 쓰고, 일반 백성은 변소(便所)라 했다. 된소리 '편'이 '변(便:편할 변)'으로 바뀌었다. 똥을 누면 크게 편하고(大便), 오줌을 누면 작게 편하다(小便). 근심을 더는 해우소(解憂所)는 절에서 쓴다. 화장실은 일제강점기부터 쓴 말이다. 송광사는 솥이 크기로 유명하고 선암사는 뒷간이 깊기로 유명하다. 각 절에서 온 스님들이 자기 절 해우소가 크다고 발바닥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높이에 대하여 서로 자랑하였다는 우스개도 있다. 널판에 쓴 선암사 뒤간 글씨도 일품이다. 뒤간을..

무덤에 문무인석은 왜 세웠을까?

무덤에 문무인석은 왜 세웠을까? 문인석(文人石)은 문관(文官), 무인석(武人石)은 무관(武官)을 돌로 새겨 무덤 앞에 세운 석상이다. 문인석은 관복을 입고 홀(임금을 만날 때 들고 가는 작은 판)을 들고 있고,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칼을 쥐고 있다. 왕릉과 사대부 가문의 묘 앞에 세워서 사악한 기운을 쫓아 죽은 이의 혼을 지키고자 만든 석물이다. 살아생전에 영화를 기리고자 한 뜻도 있다. 공덕이 적거나 후손이 번창하지 못하거나 역할이 적었던 사람들이 묻힌 무덤에 가보면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왕릉에 다니다가 보면 문무인상 크기와 조각이 우람한 석물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있는 석상들이 대체로 큰데, 태조의 능인 건원릉과 여주에 세종을 모신 영릉의 문인석은 그러한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무인석도..

굽은 나무기둥 절집 / 굽어서 아름다운 기둥

굽은 나무기둥 절집 굽어서 아름다운 기둥 - 서산 개심사, 안성 청룡사, 부안 내소사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곧은 나무를 재목으로 쓰기 위해 다 베어서 쓰고 나니,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나무가 되었다. 굽은 나무는 자라면서 하늘 구경도 하고 땅 구경도 하고 여유가 생겨 아름답다. 절집에서 굽은 나무를 기둥으로 쓴 절집이 있다. 곧은 나무를 구할 수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조화를 받아들인 여유가 있었기에 썼을 것이다. ○ 서산 개심사(開心寺) 심검당 서산 개심사는 마음을 여는 절집이다. 허리 굽은 기둥으로 집을 짓고 심검당(尋劍堂)이란 현판을 달아 종무소와 요사채로 쓰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지은 절집으로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왕벚꽃을..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13곳 / 등재 내용과 유산의 가치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13곳 - 등재 내용과 유산의 가치 2018년 6월 한국의 산사 7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은 13곳이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은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과 불국사로부터 등재되기 시작하였다. 내용별로 보면 문화유산 12곳과 자연유산 1곳이다. 등재된 13곳의 내용과 등재 유산의 가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 )은 위치와 등재 년도 1. 해인사 장경판전 (경남 합천. 1995년) - 13세기 제작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15세기에 지은 보관 건축물 - 자연환경을 이용한 과학적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해인사 장경판전 2. 종묘 (서울 종로. 1995년) -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 - 유교적 왕실체제의 고유 건축물...

절 건물 이름

절 건물 이름  절에 가보면 건물에 이름을 붙여놓은 현판이 많다. 신앙 대상이 되는 부처와 보살이 여럿이며, 기도 목적에 따라 그 대상을 따로 두었기 때문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 하고, 불교의 진리를 불법(佛法)이라 하며, 불법이 있는 집을 법당(法堂) 또는 불전(佛殿)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금당(金堂)이라고 했다. 부처나 보살을 모시는 곳은 전(殿), 민간신앙에서 모시던 것을 수용한 곳은 각(閣)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 대웅전(大雄殿)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절에 가보면 가장 많다. 불법을 밝힌 큰 영웅이라 대웅이다. 옆에 다른 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아미타불, 약사여래 등등. 세 분을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쓰기도 ..

서낭당 / 마을 수호신을 모시던 당집

서낭당 마을 수호신을 모시던 당집 산에 가거나 여행을 하다가 오래된 마을을 지나다 보면 당산나무가 서 있고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서낭신을 모신 당집을 구경할 수 있다. 그 부근에는 돌탑이 있고 돌무더기를 군데군데 쌓아 놓았다. 그 주위에는 무명천이나 오색천을 끼워서 엮은 새끼줄을 얼기설기 둘러놓았다. 이곳을 통틀어 서낭당 또는 성황당(城隍堂)이라고 한다. 서낭당은 서낭신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만들었다. 서낭의 형태는 나무일 수 있고, 돌일 수 있고, 당집일 수 있다. 대부분 느티나무 같은 큰 나무가 서 있다. 소나무나 회나무도 있지만 느티나무는 당산나무를 대표하던 나무였다. 천을 끼워 놓은 줄은 잡귀가 범법 하지 못하도록 막는 금줄 역할을 했다. 서낭을 세우는 자리는 마을 입구이거나 고갯마루..

우체통과 우편함

우체통과 우편함 우체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편지 쓰는 일보다 핸드폰 문자나 이메일로 알리는 일이 늘어나니 우체통이 줄고 있는 것이다. 석 달 동안 우편물이 3통 이내이면 우체통을 폐쇄할 수 있다고 한다. 전국의 우체통 갯수는 1993년 57,000여 개. 2006년 27,000여 개로 줄더니, 2013년에는 19,000여 개로 매년 2000~3000 개씩 줄고 있다. 지금은 더 줄었지 싶다. 1894년 우정총국이 설치되면서 우체통이 생기고 우표도 발행하였는데, 갑신정변으로 우편업무는 중단되었다가 갑오개혁으로 10년 만에 재개되었다. 우리나라에 현대식 우편제도가 들어선 것은 120년 정도 된 셈이다. 우편엽서가 발행된 것은 1900년이니 우표와 우편엽서(당시는 우체엽서라고 함)를 모으는 사람은 관심이 ..

서울성곽 성돌 각자(刻字)

서울성곽 성돌 각자(刻字)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가 연인원 12만명을 동원하여 49일만에 쌓은 성이라 기간도 짧고 백성의 고초가 말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 인구가 5만이었으니 전국의 백성을 동원한 대역사였다. 세종 때와 숙종 때 개축 및 수축을 이어가 18㎞ 도성을 완료하였다. 구간마다 실명제를 도입하여 허투루 만들지는 않으려 하였다. 성돌의 각자는 백성의 피로 이루어진 귀중한 흔적인 것이다. 다시 돌아보아 그 의미를 새기고 싶다. [참고도서]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 (홍기원지음. 살림. 2010년 간) 가경구년(嘉慶九年) / 북악산 (2007.4.4)가경(嘉慶) 9년은 청나라 인종의 연호로 조선 순조 4년 (1804년)이다 을유구월(乙酉九月) / 서울성곽 북악산구간 (2007.5.4)을유구월은 영조 4..

사천왕 /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귀신의 왕

사천왕(四天王)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귀신의 왕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면 인상도 험악한 네 명의 장수들이 서 있다. 하나씩 무엇을 들고 형형 색깔 요란하고 눈이 둥글둥글한 이들이 사천왕이다. 어떤 절에 가면 아예 발 밑에 악귀까지 밟고 있는 모습이 시위를 하듯 잘못하면 이렇게 혼난다는 표정이다. 신성한 도량에 이런 사천왕상을 세워 둔 것이 이상 할 수도 있지만 그 뜻이 다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하고 전래되었듯 사천왕도 인도 토속신앙에 나오는 귀신의 왕이다. 그 귀신의 왕이 부처를 수호하기 위해 절마다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절문에 들어오기 전에 절 찾는 사람들에게 상과 벌을 내려 자기 생활을 돌아보는 역할을 하고 잡귀를 막아 절집을 신성하게 한다.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이 사천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