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깡
추억의 바리깡
이발기계인 바리깡(Bariquant)은 프랑스어이자 제조회사 이름이기도 하다. 얼핏 들으면 바리깡이 일본말로 오해하기 쉬운데, 우리말에 섞여 있어서 국적을 찾기가 어려운 말들이 꽤 있다. 빵과 덴뿌라(튀김)가 포루투갈어에서 왔듯이 말이다.
빡빡머리를 하고 다녔던 중고등학생 때 바리깡은 생활과 밀접하였다. 중학교 때 외가에 갔을 때, 큰외삼촌이 머리를 깎아준다 하여 머리를 내밀었다. 나무 손잡이로 된 골동품 바리깡으로 내 머리를 깎다가 기름을 덜 먹였는지 머리 꼭대기만 조금 남았을 때 바리깡이 머리카락을 물어뜯기만 하고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파서 눈물이 날 정도라 더 이상 안 깎겠다고 버텼더니 거울을 보여주었다. 정말 조금 남은 머리카락 모습이 가관이었다. 할 수 없이 다 못 깎은 머리통을 움켜쥐고 동네 이발관으로 갔다. 이발사들이 내 머리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은 당연하였다. 고등학생 때는 남자 형제뿐이라서 아버지께 바리깡을 사달라고 하여 감나무 밑에 의자를 놓고서 형제들끼리 빡빡머리를 깎았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20 수년 된 동네 시장 골목 이발관이 마침 쉬는 날이라, 동네 다른 이발관을 찾아다녔더니 모두가 비정상 영업을 하는 이발관이었다. 할 수 없이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서 머리를 깎았지만 기분이 이상하였다. 학생들이 다니는 이발관이 따로 있기도 하고 미용실에서도 이발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없었다면 바리깡을 사서 아이들 머리를 집에서 깎아줘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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