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세월 속으로 56

수판 / 셈판 용구

수판(數板) 셈판 용구 수판은 주판(珠板)이라고도 한다. 판(板)에 나무나 플라스틱 알맹이를 아래위로 나열하여 계산하기 위해 만든 셈판이다. 수판으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할 수 있다. 예전엔 셈할 일이 있으면 수판이 필수품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따로 주산을 공부하던 시간이 있었고, 운동회 때도 달리기와 수판셈을 혼합한 경기도 있었다. 수판을 처음 사용한 바빌로니아에서는 기원전 3천년 전 판 위에 모래를 뿌리고 돌멩이를 올려놓고 셈했다고 한다. 그 뒤 기원 전 500년 전에는 중국에서 대나무를 이용해서 수판을 만들었다는 자료가 전한다. 우리가 사용하던 수판도 아래쪽이 5개이던 알이 4개로 바뀌었다. 상업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 은행에 취업을 할 때는 수판이 무기였다. 얼마나 셈이 빠른지 간단..

지게 / 온몸으로 나르는 운반 도구

지게 온몸으로 나르는 운반 도구 지게는 우리 민족이 발명한 운반 도구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발명품에 당연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문헌(譯語類解)에 나오는 것은 병자호란 이후 숙종 때(숙종 16년. 1690년)에 등장한다. 촌에서 지게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지게를 질 사람의 키와 몸에 맞추느라 자르고 다듬어 만든다. 지게는 좁은 농로나 나무하러 다니는 산길에서 딱 맞는 운반 도구이다. 키에 몇 배나 되는 물건을 지게에 지고 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감탄하곤 한다. 지게가 하중을 분산하고, 지게막대기로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해다가 지게에 담아놓은 것을 짊어졌다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고꾸라진 경험이 있다. 지게가 몸에 비해 큰 데다가 무게를 이겨내지도 못한 ..

가마니 / 짚으로 만든 포대

가마니 / 짚으로 만든 포대 가마니 / 정주영기념관 (정주영 회장은 미곡상 점원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가마니는 짚으로 만든 포대이다. 가마니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07년으로, 가마니란 말은 일본어 가마스(かます [叭])에서 유래하였다. 가마니를 짜는 가마니틀(製筵機)도 그때 들어왔다.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에는 '섬'을 썼는데, 사이가 성기어 쌀을 담으면 새어 나와서 알이 더 굵은 곡식을 담았다. 지금은 '섬'을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고 있어 '한 섬' 그러면 벼는 200㎏이고, 쌀로는 144㎏으로 셈하고, 가마니는 80㎏을 담았다. 가마니 생산을 시작한 시기가 일제가 조선에서 미곡을 수탈한 시기였다. 수탈을 하려고 그들은 철도를 놓고 항구를 확장하고, 운반을 쉽게 하려고 가마니를 들여왔다..

시내버스표, 전철표 / 종이표, 토큰이 사라졌다

시내버스표, 전철표 종이표, 토큰이 사라졌다 종이로 만든 시내버스표 버스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이 1912년 일본인이 대구, 경주, 포항 간 부정기로 운행한 것이 처음이다. 서울에서 운행한 것은 1928년이다. 지상 궤도를 달리는 전차는 서대문 청량리 사이를 운행한 것이 1899년이니 전차가 미리 등장하였다. 지하철 개통은 1974년 8월 15일이다. 그날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되어 돌아가신 날이다. 전차표는 1968년 전차가 없어지던 해에 2장에 5원이었다. 버스삯도 비슷하였지 싶다. 버스 차장은 승객을 꾸역꾸역 태우고 오라이 하면서 버스 바깥을 두드리면, 운전기사는 출발하며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면 승객이 왼쪽으로 몰리는 사이에 차장이 문을 닫았..

빨간약 - 아까징끼 / 머큐로크롬, 포비돈요오드를 부르는 이름

빨간약 - 아까징끼 - 머큐로크롬, 포비돈 요오드를 부르는 이름 빨간약 / 포비돈요오드 약상자를 정리하다가 빨간약이 나왔다. 옛날에 아까징끼라고 어른들이 부르던 소독제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고 우리도 따라 불렀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빨간약은 사전에 없고, 빨간약인 머큐로크롬은 있었다. 피부 점막 소독제라 나와 있다. 풀이나 칼에 베이거나, 압핀에 찔리거나, 넘어져서 손이나 얼굴이 긁히거나, 개에게 물려도 빨간약을 발랐다. 심지어 배가 아파도 바르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예전에 옥도정기란 것이 있었다. 요오드팅크의 일본말이다. 옥도(沃度)는 요오드(Iodine)이고, 정기(丁幾)는 팅크(Tincture)의 일본말이다. 요오드를 알코올에 녹여 만든 소독약이다. 요오드팅크를 바르면 ..

지우개 / 지운다는 것 …

지우개 / 지운다는 것 … 연필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어서 좋다.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연필을 고무로 지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필로 쓴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면 희미한 자국이 남거나 찢어지기도 한다. 때론 지운 것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좋은 일이다. 우리 머릿속에도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는 모양인지 세월이 가면 기억은 희미한 줄기로 남아 아련하다. 어쩌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순리대로 따를 일이다.

고무신 / 추억에 신발

고무신 추억에 신발 학교 다닐 나이에 신은 신발이 검정 고무신이었다. 흰 고무신은 내가 검정 고무신을 신은지 얼마 안 있어 나왔다. 타이어표, 왕자표, 기차표, 말표가 그 당시 신었던 고무신 상표였다. 고무신은 질겨서 그야말로 만년 신발이었다. 새 고무신은 뒤가 물려서 발에 맞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서는 고무신을 신고, 학교 갈 때는 까만 운동화를 신었는데, 운동화가 섞이지 않게 운동화 앞에 있는 하얀 천에다가 이름을 써서 다녔다.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파하면 동생과 언덕 아래에 있는 공동수도로 내려가서 물을 날라서 먹었다. 큰 물동이에 막대기를 끼고 언덕을 올라오다가 물이 출렁출렁 넘쳐 고무신에 물이 들어가면 뽀르락뽀르락 소리가 났다. 그렇게 한 두멍을 가..

핸드폰 / 기계도 세월 따라

핸드폰 기계도 세월 따라 1885년 평양-의주간 전신선을 설치하였다. 중국이 한반도 지배권을 강화하려고 설치한 것이었다. 미국인 모스가 전신부호를 발명하여 전신을 보급한 지 30여 년이 지난 뒤였다. 그 뒤 조선의 고종은 봉수제도를 철폐하였다. 파발마로 달리고 연기로 연락을 하던 기능은 골동의 제도가 되고 말았다. 1896년에 서울-인천 간 전화가 개통되고, 다음 해에는 덕수궁에 전화를 설치하였다. 미국에서 전화 특허를 받은 지 20여 년만이었다. 교환수가 전화를 연결해 주던 일도 1950년대까지였다. 1958년에는 미국에서 무선호출 벨보이(bell boy)를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1982년 무선호출을 삐삐라고 부르며 시작하였다. 이제 전화기는 최첨단의 기능을 탑재하고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모든 것..

면도솔 / 30년이나 얼굴을 비벼

면도솔 30년이나 얼굴을 비벼 보통 남자는 머리카락을 땋지 않으면 깎는다. 남자들이 그렇게 머리를 깎기 시작한 것이 1895년 단발령을 내린 이후부터다. 그러니 한국의 남자가 머리를 깎은 것은 120년이 넘었다. 머리를 깎고 난 뒤 면도를 한다. 이발(理髮)이 머리털을 다듬고 자르는 것이라면, 면도(面刀)는 얼굴에 난 털을 칼로 밀어서 없애는 일이다. 털이 유난히 많은 나에게 면도는 큰 공사다. 이발소에서 면도를 할 때, 뜨거운 물에 수건을 넣었다가 꺼내서 짜고, 훌훌 털어서 열기를 대강 없애고 얼굴에 덮는다. 그러면 털을 부드럽게 자를 수 있다. 코는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뜨겁고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면도를 하고 난 뒤 얼굴은 화끈거리고 쓰리다. 그래서 뜨겁게 하지 말아 달라고 미리 부탁은 하는데,..

시계 / 시계는 멈추어도 시간은 간다

시계 시계는 멈추어도 시간은 간다 한 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이렇게도 빨리 흘러간다. 세월의 빠르기가 나이대로 간다는 말도 있고, 늙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전보다 더 빨라진 것을 느낄 때부터란 말도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도 해는 뜨고 지니 시간은 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측정의 기술이 문제인데, 우리나라〈삼국사기〉에도 물시계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란 물시계가 정확한 시각을 알린 시계였고, 앙부일구라는 해시계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시계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명나라에 갔던 사신이 병자호란 전인 1631년에 가져왔다. 시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