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세월 속으로 56

국화꽃잎을 바르던 미닫이

국화꽃잎을 바르던 미닫이 미닫이 / 창덕궁 (서울 종로) 어릴 때 살던 집에는 미닫이가 있었다. 문을 열고 닫는 방법에 따라 앞뒤로 열었던 여닫이, 밀고 닫았던 미닫이, 이들을 합한 몰아서기가 있다. 보통 미닫이 바깥에 여닫이를 두었다. 미닫이는 문지방 아래나 벽 중간에 머름이라는 공간을 두고 그 위에 미닫이를 끼워 만들고, 바깥에는 여닫이를 해 달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온 식구가 우물가에 가서 물을 품어서 창틀을 씻고 창호지를 발랐다. 미닫이나 여닫이 손이 가는 쪽에는 국화꽃이나 국화잎, 맨드라미 등 꽃밭에 있는 꽃잎을 붙였는데, 그러면 손이 가더라도 문이 덜 해지고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꽃과 잎을 볼 수 있었다. 겨울에 춥지 않으면 여닫이는 그냥 열어 놓고 미닫이만 닫아서 환한 햇볕을 방안 가득..

성냥으로 불을 켜던 시절

성냥으로 불을 켜던 시절 팔각통 유엔성냥 학교 다닐 때 전북 장수에서 겨울 봉사활동을 마치고 무주구천동에 간 적이 있었다. 여관방을 얻었는데, 우리 보고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넣으라고 하였다. 찬바람은 불고, 손은 곱고, 성냥은 눅어서 켜지지 않고 몇십 분을 그렇게 성냥과 씨름한 적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불은 부싯돌로 일으켰는데, 그다음에는 소나무 끝에 황을 찍어 말린 것에 비벼서 불을 만들었다. 성냥은 석류황(石硫黃)에서 비롯된 말이다. 돌처럼 굳힌 유황을 얇게 만든 나무 끝에 묻혀 불을 붙이는 것이 성냥이다. 재료의 이름을 따서 한자어인 석류황이라 했는데, 성뉴황, 그리고 성냥으로 변하여 고유어처럼 되었다. 어른들이 성냥을 방언으로 다항이라 했는데, 그 유래는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에 성냥이 ..

바가지 / 박 바가지는 없어지고, 바가지란 말은 많아지고

바가지 박 바가지는 없어지고, 바가지란 말은 많아지고 박으로 만든 그릇이 바가지다. 박은 여러 가지 그릇의 용도로 쓰기 위해 심은 작물이었다. 물을 뜨고, 간장을 뜨고, 팥죽을 푸고, 씨앗을 담던 바가지였다. 밥을 담아 먹기는 했으나 상 위에 올려놓고 먹지는 않았다. 어른들이 복 나간다고 그랬는데, 보기 싫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혼례 때 함을 받으면서 사주를 받는 그릇으로도 썼는데, 지금도 예전처럼 함바가지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팔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바가지의 용도는 다양했다. 원효대사가 바가지를 두드리며 다녔다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목탁 대용이었다. 농가에서는 새를 쫓을 때 바가지를 두들겼다. 소리가 컸으니 적절한 용구였다. 전통혼례 때는 신랑이 신부집에 올 때 엎어놓은 바가..

체 / 가루를 치거나, 액체를 거르거나, 말을 거르거나

체 가루를 치거나, 액체를 거르거나, 말을 거르거나 체는 빻아놓은 곡식의 가루를 치거나, 액체가 있는 것을 짜내어 거르는 도구이다. 기계식 방앗간이 있기 전에는 수확한 곡물의 양이 많으면 소가 끄는 연자방아나 사람이 디디는 디딜방아로 찧고 바수었다. 두부콩이나 옥수수 등은 맷돌로 돌려서 썼고, 곡물을 소량으로 찧거나 잘게 바숫는 데는 절구를 썼다. 그렇게 돌리고 찧고 바수어 나온 것을 더 곱게 치거나 거른 것이 체였다. 체는 나무를 얇게 켜서 두 개의 바퀴를 만들고 그 사이에 말총, 철사나 나이론을 끼워서 바닥을 만들었다. 둘러 싼 바퀴가 쳇바퀴이고, 바닥을 쳇불이라 하는데, 쳇불 구멍은 크기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굵은 것은 떡고물이나 메밀가루 등을 치는데 쓰고, 가는 것은 술을 거르는데 썼다. 우리 ..

도시락 / 추억의 별미

도시락 / 추억의 별미 도시락은 순 우리말, 옛말은 도슭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음식을 담아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릇이 도시락이다. 도시락은 순 우리말이다. 한자는 없고, 옛말은 '도슭'이었다. 도시락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도시락 역사는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다니던 역사이니 오래되었다. 조선 중기 김천택이 편찬한 시조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 1728년)에 도슭이 나왔다.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에, '지게에 질머 지팡이 바쳐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털어 닢담배 픠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하는 글이 나온다. 점심도슭을 부시다는 것은 점심도시락을 먹었다는 것이다. 바가지나 나무곽에 연잎이나 토란으로 싼 도시락이 아니었을까? 잎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이 광..

필름카메라 / 아날로그카메라의 퇴장

필름 카메라 아날로그 카메라의 퇴장 필름 카메라 예전에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셔터를 함부로 누를 수 없었다. 필름을 사야 했고, 인화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하프 사이즈 카메라를 샀다. 필름 한 장에 두 판을 찍을 수 있어서다. 24장이나 36장짜리 두루마리 필름을 가게에서 사서 끼우는데, 앞에 몇 장은 포기하고 시작한다. 끼울 때 빛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필름도 빛이 들어가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졸업식이나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 빛이 들어가서 낭패를 봤다는 얘기를 가끔 들을 수 있다. 다 찍고 나서도 사진기에서 필름을 빼는 손잡이를 거꾸로 돌려서 뺀 다음, D.P&E(현상 인화 확대)라 쓴 사진관엘 찾아가서 필름을 맡겼다. 잘 된 것만 부탁하고 ..

뻥튀기 / 장날 흥을 내는 펑소리

뻥튀기 장날 흥을 내는 펑소리 오일장 구경을 다니면서 뻥튀기 장수를 보면 왠지 즐겁다. 뻥튀기 장수는 연신 '뻥이요'하며 손뼉 치고, 그 뻥소리에 시장 분위기가 절로 난다. 손주라도 있으면 곡식을 튀겨서 가져가는 재미도 있거니와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도 즐겁다. 뻥튀기 기계 옆에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뻥튀기 기계에 쌀이나 강냉이 등을 집어넣는다. 먹고 남아 말린 떡국떡도 좋은 튀김감이다. 밑불을 붙이고 기계를 돌린다. 20분이 채 안 되어 밑불을 빼고 호루라기를 길게 불어 예령을 울린다. 이제 뻥튀기 기계에서 큰소리가 나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펑'하고 대포 소리만큼 큰 소리를 내면서 고소한 튀밥연기가 자욱하게 흩어진다. 장꾼들 소리와 어울려 펑소리가 증폭되어 울린다. 시장분위기는 고조되고, 알싸한 쑥과 ..

호롱기 / 호롱호롱 탈곡기

호롱기 호롱호롱 탈곡기 호롱기 / 경북 안동 소산마을 (2009.6.14) 지금의 현대식 기계로 탈곡을 하기 전 예전에는 타작도구로 '홀테'라는 도구로 이삭을 훑어서 알곡을 내고, '도리깨'로 돌려가며 이삭을 때리거나, 볏짚을 들고 '호롱기'를 밟아가며 알곡을 털었다. 도리깨는 콩이나 팥처럼 굵은 곡식을 두드려 털어내는 것이라면, 시대가 더 지나 발로 돌리는 호롱기가 등장하였다. 호롱기는 원통에 판자를 둘러서 대고 그 위에 철사로 꺽새를 만들어 박아 놓은 농기구였다. 돌아가는 소리가 호롱호롱 그런다고 호롱기인데, 와랑와랑 그런다고 와랑기라 부르기도 했다. 마당에 멍석을 넓게 펼쳐 놓고 호롱기를 마당 한편에 갖다 놓고 일을 시작한다. 동네 한두 대 있을 때이니 돌아가며 쓰고, 품앗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

키 / 알곡을 골라내는 키질, 껍데기는 가라

키 알곡을 골라내는 키질, 껍데기는 가라 키 / 충북 제천시 영천동 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아침, 이웃집 아이가 키를 쓰고 박바가지를 들고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아이들이 오줌을 싸면 그렇게 해서 소금을 꿔오라고 시켰다. 원래는 '너 오줌 쌌구나' 해야 하는데, 어머니는 물어보지도 않고 소금을 담아주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창피를 줘서 오줌 싸는 것을 막아보려는 방법이었다. 지금 같아선 아이의 인권문제를 들먹일 것 같다. 키를 알곡을 골라 내는 용도나 오줌싸개용 덮개로 본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키는 알곡을 골라내는 기구이다. 추수를 하면 알곡, 검불, 돌, 쭉정이 등이 섞여 있다. 적은 양이면 그것을 키에 담아 아래 위로 흔들어 바람을 내며 까불러 분리를 하는 작업이 키질이다. 키질..

가마솥 / 대용량의 무쇠솥

가마솦 대용량의 무쇠솥 가마솥 / 순천 낙안읍성 솥은 음식을 해 먹는 용기다. 솥은 문헌상으로 삼국사기에 고구려 대무신왕 4년(서기 21년) 솥 정(鼎)이 나온다. 솥은 처음에는 청동기였다가 나중에는 무쇠로 만들었다. 다리가 있는 솥이 정(鼎)이고, 다리가 없는 솥이 부(釜)이다. 한자의 의미로 찾으면 정(鼎)은 '솥'이고, 부(釜)는 가마이다. 즉 가마솥은 다리가 없고, 솥바닥이 둥글고, 가장자리가 오목 하다. 어릴 때 우리 집엔 윤이 나는 큰 가마솥이 있었다. 메주콩을 삶거나 팥죽, 찰밥을 하거나 물을 데울 때 쓰던 무쇠솥이다. 솥뚜껑을 열면 부엌에 김이 한가득 서려 앞이 안 보였다. 농사를 짓는 큰집에 가면 식구가 많아 무쇠솥에 밥을 했고, 사랑채에 있는 무쇠솥엔 소죽을 끓이고 뚜껑을 뒤집어 그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