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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 추억에 신발

향곡[鄕谷] 2017. 6. 16. 23:05

 

고무신

추억에 신발

 

 

 

 

 

 

 

학교 다닐 나이에 신은 신발이 검정 고무신이었다. 흰 고무신은 내가 검정 고무신을 신은지 얼마 안 있어 나왔다. 타이어표, 왕자표, 기차표, 말표가 그 당시 신었던 고무신 상표였다. 고무신은 질겨서 그야말로 만년 신발이었다.  고무신은 뒤가 물려서 발에 맞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서는 고무신을 신고, 학교 갈 때는 까만 운동화를 신었는데, 운동화가 섞이지 않게 운동화 앞에 있는 하얀 천에다가 이름을 써서 다녔다.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파하면 동생과 언덕 아래에 있는 공동수도로 내려가서 물을 날라서 먹었다. 큰 물동이에 막대기를 끼고 언덕을 올라오다가 물이 출렁출렁 넘쳐 고무신에 물이 들어가면 뽀르락뽀르락 소리가 났다. 그렇게 한 두멍을 가득 채우고, 청소를 마치고 난 뒤에야 숙제를 하였다. 큰집가면 냇가에서 고무신으로 물고기를 잡았고, 고무신을 신고 저수지에 갔다가 미끄러져 물속에 빠지기도 했다. 저수지나 논두렁에 발이 빠지면 고무신은 빠지지 않아 손으로 따로 끄집어내어야 했다. 

 

고무신은 1919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신발이다. 베이비붐 시대에는 고무신이 찢어지면 꿰매서 신었고, 시장통에 가면 고무신을 때우는 장사가 있었다. 멀리서 학교 다니던 아이들은 헝겊 책보자기를 등에다가 메고 뛰는데, 고무신이 벗겨질까 봐 끈으로 묶고 뛰는 아이들도 있었다. 고무신은 소꿉놀이를 할 때 흙이나 물을 담아 나르는 용도로 썼고,  친구들과 길을 가면서 고무신 차기를 하여 누가 멀리 가나 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신었던 고무신은 우물로 가서 씻어서 엎어 놓으면 금방 신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분은 직접 고무신에 꽃그림을 그리고, 그 신을 부인이 신고 다닌다. 어떻게 뜻이 이렇게 잘 맞을까.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심전심의 사랑이 고무신에 듬뿍 담겨 있다. 지금은 고무신을 신는 사람이 드물다. 대용품이 등장하였고, 일부러 마련하지 않으니 보기 드물다. 사랑이 듬뿍 담긴 고무신을 신어도 좋으련만. 

  

 

 

 

 

 

 

 

 

 

 

 

고무신 차기

 

 

바깥 분이 그리고, 부인이 신고다니는 꽃 고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