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솔
30년이나 얼굴을 비벼
보통 남자는 머리카락을 땋지 않으면 깎는다. 남자들이 그렇게 머리를 깎기 시작한 것이 1895년 단발령을 내린 이후부터다. 그러니 한국의 남자가 머리를 깎은 것은 120년이 넘었다. 머리를 깎고 난 뒤 면도를 한다. 이발(理髮)이 머리털을 다듬고 자르는 것이라면, 면도(面刀)는 얼굴에 난 털을 칼로 밀어서 없애는 일이다. 털이 유난히 많은 나에게 면도는 큰 공사다.
이발소에서 면도를 할 때, 뜨거운 물에 수건을 넣었다가 꺼내서 짜고, 훌훌 털어서 열기를 대강 없애고 얼굴에 덮는다. 그러면 털을 부드럽게 자를 수 있다. 코는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뜨겁고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면도를 하고 난 뒤 얼굴은 화끈거리고 쓰리다. 그래서 뜨겁게 하지 말아 달라고 미리 부탁은 하는데, 그러면 잘 안 잘린다고 가죽조각에 칼을 대고 몇 번씩 쓱쓱 갈고 나서 면도를 한다. 수건을 뜨겁게 하지 말아 달라고 매번 부탁하기도 그렇고, 면도를 하고 난 뒤 얼굴도 쓰리기에, 아예 이발소에서는 면도는 안 하기로 했다.
그래서 구내 이발소 주인에게 부탁하여 면도통과 면도솔을 구하였다. 종로 주변 이발용품점에서 구한 면도솔과 면도통을 지금까지 30년을 쓰고 있다. 비누에 묻혀 면도를 하는 일이 번거롭다는 생각은 없다. 덕분에 면도솔은 오랫동안 내 곁에서 함께 하는 귀중한 물건이 되었다. 장장 30년 긴긴 세월을 매일 이렇게 같이 하는 물건이 어디 있을까? 내 얼굴을 비비던 솔은 이제 털이 숭숭 빠지고 뭉텅해졌다. 그래도 평생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한 그 공을 잊을 수가 없다. 솔아, 뭉텅한 모습은 끝없는 너의 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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