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몹시 더운 여름에 친한 벗이 네로다
좋아하는 옛시를 생각날 때마다 썼던 부채다. 부채의 팔덕 중 하나인 비를 가리려다 얼룩이 묻었다
부채는 '부치다'의 어간 '붗'에 잡음막대를 뜻하는 '채'가 붙은 말로 바람을 부치는 도구다. 옛 혼례식 때 신랑신부 얼굴을 가리거나 외출 때 얼굴을 가리는데 쓰고, 판소리를 하면서 손에 들고 박자를 맞추거나 시선을 모으고, 무당이 굿하는데 들고 춤을 추는데 쓰는 등 용도가 많았다.
예전에는 신분에 따라 부채는 종류가 달랐고 용도도 달랐다. 양반은 말을 타고 가면서 상민이나 천민이 읍을 하지 않도록 부채로 얼굴을 가렸으니, 양반의 부채는 그런 용도였다. 부채는 하사품이기도 했지만 뇌물 용도로도 쓴 일이 있었다. 민요에 첩을 팔아 부채를 산다고 한 것은 그런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 폭염은 1994년 이후 기록적이다. 에어컨을 계속 틀면 전기세는 누진제라 많이 나온다. 서민의 고통을 던다고 누진제를 줄인다 하는데 그것도 찔끔이라니 서민들은 더위에 힘들다. 이럴 때 선풍기가 대용이니, 선풍기가 달갑지 않다면 부채로 부치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단오에 부채를 선물로 했는데, 정성이 깃든 부채 선물은 아름다운 일이다.
부채에는 팔덕(八德)이 있다는데, 첫째,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고, 둘째, 방석으로 사용하며, 셋째, 밥상 구실도 하고, 넷째, 머리에 이고 다른 물건을 얹어 나를 수 있으며, 다섯째, 햇빛을 막는 차일 구실도 하고, 여섯째, 비를 막으며, 일곱째, 모기나 파리를 쫓고, 여덟째, 얼굴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신문에 실린 날짜는 모르지만 일제압제기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부채에 대한 시가 재미있어 오래전에 적어 둔 것이 있다. 운자를 '가 나 다'로 하였는데, 쉽게 지으면서 부채의 본질을 꿰뚫는 표현이 기가 막혀 감탄이 나온다.
참대 붙인 종이가
흔들면은 바람나
몹시 더운 여름에
친한 벗이 네로다
바람이 많이 나와 이번 여름에 애용한 부채이다
내가 친구에게 써서 보낸 부채를 친구가 사진으로 다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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