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세월 속으로

야간 통행금지 / 밤이 늦으면 다닐 수 없다는 것

향곡[鄕谷] 2023. 8. 12. 13:03

야간 통행금지

밤이 늦으면 다닐 수 없다는 것

 

 

 

남대문 / 조선시대

 

 

 

조선시대와 해방 후 1981년까지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다. 밤이 늦으면 길에 다닐 수 없었다. 이를 통금이라 그랬다. 조선시대에는 밤 11시(이경)부터 새벽 4시(오경)까지가 통금 시간이었다. 이경에 인정(人定)이라 하여 종각에서 28번의 종을 쳐서 사대문을 걸어 잠갔고, 새벽 4시에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의 종을 쳐서 아침을 시작하였다. 이 제도는 고종 말년인 1895년에 없어졌다가 해방 후 생겨나 1981년 말까지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에서는 밤 0시, 새벽 4시, 정오에 경찰서 망루에서 사이렌이 울려서 그 시각을 알렸다. 치안유지가 목적이라 하여 자유로운 통행을 제약한 조치였다. 집에서도 자녀들 안전과 가정교육을 위해 통금시간이 있기는 하다.

 

통금이 임박하면 서둘러서 귀가하고 술을 먹다가도 총알택시를 붙잡는 진풍경이 도로에서 벌어졌다. 막차를 놓친 사람들은 여관 신세를 졌고, 술꾼들은 아예 통금에 걸렸다며 새벽까지 술을 먹는 이유로 삼았다. 통금시간이 임박해서 하숙집으로 가다가 파출소에 가서 통행증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집이 가까우니 그냥 가라는 얘길 듣고 나왔다. 충남 어디서는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2차는 다리를 건너 통금이 없는 충북으로 가서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열차가 연착하면 야간통행증을 나누어 주었다. 종이가 모자라면 손바닥에도 찍어주었다. 통금에 걸리면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즉결심판으로 넘어가 범칙금을 내었다. 통금에 걸린 것은 드러내고 얘기할 일이 아니기에 기를 쓰고 통금시간은 피하였다. 야경꾼들은 야경방망이를 두드리며 다녔고, 사람들은 야경꾼에 걸리지 않으려고 골목길로 숨어 다녔다. 통금에 걸리면 갖은 이유를 대거나 줄을 대며 풀려나려고 이곳저곳 전화를 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취업을 하였다. 일이 많아 한동안 매주 한두 번은 통행금지로 집에 가지 못하였다. 직원들 중에 많은 인원이 집에 못 가기 일쑤라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숙직방이 비좁아 사무실 바닥에 슬리핑백을 깔고 잠자는 직원들이 많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무실 부근에서는 데모대를 향한 최루탄이 연일 터져서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집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런 시간도 지나가 1982년 1월,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한참만에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늦게라도 집에 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잠을 잔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