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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안동역 /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향곡[鄕谷] 2020. 12. 26. 13:02

 

 

추억에 안동역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옛 안동역 (2019.12.8)

 

 

 

2020.12.16 안동시 운흥동 옛 안동역에서 마지막 열차가 떠났다. 이제 열차를 이용하려면 송현동에 새로 지은 안동역으로 가야 한다. 안동역은 1930년 완공하여 이듬해부터 경북선 열차가 다녔고, 중앙선 열차가 안동을 통과한 것은 1940년이었으니 90년 세월을 이곳 사람들과 같이 하였던 곳이다. 도시가 커지면서 열차역이 바뀌는 경우는 가끔 봤지만, 나고 자라던 곳에 있던 역이 이사를 가니 내가 집을 옮긴 것처럼 남다르다.  

 

열차가 안동으로 들어오면서 낙동강을 따라 달리던 중앙선이 직선으로 바뀌어 그것만으로도 소요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 안동으로 바로 오면 될 것을 일제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을 해코지하고자 돌아서 철도를 낸 것이다. 석주 선생은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들어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닦았다. 열두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이 집을 일제가 가만 둘 리가 없었다. 이제 석주 선생의 종가인 임청각 앞 철도를 걷어내고 그 터전을 복원한다고 한다. 모두 복원하기는 어렵겠지만 깊게 박은 대못을 이제야 뽑는다.  

 

초등학교 때 처음 탄 열차는 연기가 많이 났다. 아마도 증기기관차인 것 같고, 제천에서 디젤기관차로 바꿔서 운행하였다. 열차가 들어오면 역무원이 깃발을 흔들고, 기관차 여객원이 둥그런 쇠고리를 팔에 끼워주고 그랬다. 좌석제가 없어 서로 빨리 타려고 뛰어갔고, 자리가 없으면 둘 사이에 끼어 앉거나 팔걸이에 앉기도 했다. 터널을 지나면 연기가 매콤하였고, 터널을 나오면 문을 열어 환기하였다. 안동에서 청량리로 오가는 열차는 정시에 도착하면 9시간 반인가 걸렸는데, 12시간 걸린 적도 있었다. 어머니와 같이 완행열차를 탔는데 털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하여 서울 도착할 때쯤 내 옷을 완성할 정도였다. 한 번은 외삼촌이 역 이름을 적어보고 터널 숫자는 바를 정(正) 자로 그려 보라 하였다. 터널이 일흔 개가 넘었던 기억이 난다. 죽령을 기준으로 사람들 말씨가 달랐고 분위기가 달랐다. 열차에서는 홍익회 직원이 다니며 도시락과 달걀 등을 팔았다. 죽령역에 열차가 서면 옥수수를 파는 아이들이 철로변에 숨었다가 달려 나왔고, 제천에서 기관차를 바꿀 때 사 먹던 가락국수는 일품이었다.  

 

누가 열차로 오시거나 가시면 늘 안동역까지 나갔다. 내가 올 때는 어머니가 늘 역에 나와 계셨다. 그 당시에는 개찰구에서 열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했기에 대합실 안에서 기다렸다. 연발이나 연착이 많으니 추운 날에는 나무의자 사이에 놓인 난로가에서 기다리며 곁불을 쬐었다. 열차가 많이 늦어도 어른들처럼 근처 대폿집이나 역전다방에 갈 생각은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계셨을 때 수학여행 다녀오는 학생들이 춥다고 어머니가 준비한 따끈한 차를 물통에 담아가지고 역으로 나가기도 했다. 예전에는 열차가 들어오면 집에서 안동역으로 오가는 열차를 멀리 서라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추억으로 얘기하는 안동역이 되었다. 가수 진성이 부른 노래 '안동역에서'는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  /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하는 가사가 있다. 만약 그런 약속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무작정 기다릴 일이 아니라 옛 역인지 새 역인지 확인하고 기다려야 한다.    

 

 

 

 

옛 안동역 (2015.6.13)

  

 

옛 안동역 (2015.6.13)

 

 

안동에서 탄 열차, 디젤기관차 (2019.12.8)

 

 

청량리-안동 3시간 20분 걸리는 무궁화호 열차. 옛 안동역에서 (2019.12.8)

 

 

제천에서 열차는 전기기관차로 바뀌었다 (2019.12.8)

 

 

임청각 원경. 철로 바깥으로 칸막이가 보인다 (2014.6.15)

 

 

임청각 부근 국보18호 신세동전탑 앞으로 철로를 막아 놓은 칸막이가 보인다 (2015.10.25)

 

 

국보18호 신세동전탑 앞으로 열차가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2015.10.25)

 

 

중앙선 직선화로 역사만 남은 서지역. 안동-옹천 사이로 서지,마사,이하역이 없어지고 광평역이 생겼다

 

 

안동 진모래철교 밑 소풍나온 학생들 (1960년대 초) - 안동댐이 생겨 지금은 이 부근이 수몰되고 없다

 

 

노래비 '안동역에서'

 

 

 

열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