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로(손풍구)
손으로 돌려서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손으로 일으키는 바람을 장풍(掌風)이라 하는데, 도구로 일으키는 바람이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는 부채, 풍구(風具), 풍로(손풍구)가 있다. 풍구(豊具)는 곡물에 섞인 쭉정이, 겨, 먼지를 날려서 없애는데 쓰는 농기구가 있고, 대장간에서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아궁이에서 불을 지필 때는 풍로를 썼다. 풍로는 손으로 돌려서 불을 살리는 바람통이다. 불쏘시개에 불이 잘 안 붙을 때 불이 있는 쪽으로 풍로 구멍을 맞추고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이 나와서 불을 살릴 수 있다.
어렸을 때 큰집에 가면 외양간 앞 사랑방 아궁이에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소죽을 끓일 때 작두로 썬 볏짚과 등겨를 솥에 넣고서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이때 유용한 불쏘시개가 갈비였다. 솔잎이 떨어진 것을 갈비라 부른다. 솔잎은 1년에 1/3이 떨어진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부지깽이로 갈비 안을 들추고 입바람으로 불씨를 살리는 일은 연기가 나오면 눈이 매워서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럴 때에 불씨를 살리는 풍로가 고맙기만 하다. 풍로는 달팽이관처럼 생긴 통 안에 바람개비가 있고, 바람개비가 있는 축과 손잡이가 달린 축에 굵은 줄을 열결하고 있다.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개비가 돌면서 구멍이 난 쪽으로 바람이 나온다. 불이 붙으면 나뭇가지를 더 밀어 넣는다. 주변에서 주워 놓은 검불이나 옥수숫대도 유용한 연료다.
소죽이 다 끓으면 소죽 갈쿠리로 쇠물박에 퍼담아 여물통으로 나른다. 큰 눈알을 굴리며 기다리던 소는 천천히 다가와서 먹는다. 소는 인내심이 강하여 소죽 끓이는 것을 보면서 잘 기다린다. 여물을 퍼주고 난 뒤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는다. 거기에다가 샘에서 길러온 물을 데워서 세수를 하고,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잔불에는 된장 뚝배기를 올려놓거나 감자를 굽기도 한다. 불장난을 하고 싶은 나이에 드럭 드럭 돌아가는 풍로는 아이들이 만져보고 싶은 도구였다. 아이들은 손잡이를 돌리면서 불이 붙는 재미에 아까운 볏짚을 몰래 집어넣기도 한다. 이제는 아궁이도 없어지고, 풍로도 쓸 일이 없어서 끈 떨어진 물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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