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서울 경기 탐방 69

선농단 / 왕이 농사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

왕이 농사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 선농단(先農壇) / 사적 제436호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 (2010.3.29) 농본국에 농사는 기본이다. 비 안오면 기우제를 지내고, 농사를 주관하는 신에게 제례를 드리는 것이 왕이 해야할 일 중에 하나였다. 선농단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는 ..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 / 우뚝 솟은 자리,당당한 모습

우뚝 솟은 자리 당당한 모습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 / 보물 제215호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2번지 북한산 승가사 경내 (2010.3.21) 서울 시민들이 자주 가는 북한산 산행로 중 하나가 구기동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이 있다. 대남문 오르다가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승가사 가는 길이다. 그리..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 온화하면서 중후한 마애불

온화하면서 중후한 마애불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 보물 제657호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산127-1 삼천사 경내 (2010.3.21) 구파발에서 송추 가는 길목에 삼천사골 표지판이 있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삼천사 경내에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원래 삼천사는 지금 보다 윗자리에 있었고, 삼천사 아래는 군대 막사와 ..

몽촌토성 / 올림픽 꿈을 펼친 꿈마을토성

올림픽 꿈을 펼친 꿈마을토성 몽촌토성(夢村土城) / 사적 제297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내 (2010.1.21) 몽촌토성은 백제 토성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1983년부터 7년간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동안 하남위례성의 유력한 후보지여서 관심을 끌었다. 여러 유물을 발굴하고 ..

풍납토성 / 하남위례성 비밀을 열 수 있는 성

하남위례성 비밀을 열 수 있는 성 풍납토성(風納土城) / 사적 제11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72-1 외 일원 (2010.1.19) 한성백제시대(BC18년~AD475년) 500년 도읍의 중심지인 하남위례성을 찾는 것이 아직도 숙제 로 남아있다. 없어진 나라의 자취를 찾는 일은 그 만큼 어렵다. 현재 유력한 후보지가 풍납토성..

암사동 선사주거지 / 우리나라 최대 신석기 집단주거지

우리나라 최대 신석기 집단주거지 암사동 선사주거지 (岩寺洞 先史住居地) / 사적 267호 서울특별시 강동구 선사로 233 (2010.1.19)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기원전 3~4,000년경 신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집터가 남아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 최대의 집단 주거지이다. 이곳에서 농경 유..

방이동 백제고분군 / 한성 백제시대 말기 옛무덤

한성 백제시대 말기 옛무덤 방이동 백제고분군 / 사적 제 270 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125번지 (2010.1.18) 백제시대 무덤 변천 과정을 살피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형이다. 북방식은 평지형이고 남방식은 산지형으로 쓰는데, 석촌동고분이 평지형이라면 방이동고분은 산지형으로 가는 과정..

석촌동 고분군 / 한성백제시대 초기 무덤

한성백제시대 초기 무덤. 고구려 무덤형식을 볼 수 있는 곳 석촌동 고분군(石村洞 古墳群) / 사적 제 243 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248번지 (2010.1.18) 석촌동은 돌마리 또는 돌마을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말로 바꾸어 석촌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고분군 바로 옆에는 돌마리청년회 사무실이 있다...

석파정 / 흥선 대원군의 별장

흥선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石坡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23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 16-1, 홍지동 125번지 (2010.1.15) 옛 정자가 남아있다 하여 홍지문 부근에 있는 석파정으로 갔다. 원래 석파정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서였는데 그때 이름은 삼계동정사였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의 소유가 되고 이름도 석파정으로 바뀌었다. 석파(石坡)가 대원군의 호인데 앞산이 돌(石) 언덕(坡) 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석파정이 대원군의 집이 된 사연이 흥미롭다. 대원군이 집주인 김흥근에게 삼계동정사를 팔라 하였더니 김흥근이 거절하였다. 다시 하루를 빌려달라 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빌려주었더니 대원군이 아들인 왕(고종)을 모시고 갔다. 그 후 김흥근은 임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