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단과 향나무
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024.9.27)
조선시대 국가의 기간산업은 농업과 잠업이었다. 그래서 왕은 친히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하였고, 왕비는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를 하였다. 서울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과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先蠶壇)은 이런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었다. 왕이 친히 밭을 갈던 터와 선농단이 있던 곳이 제터로 지금 제기동(祭基洞)이다.
전철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선농단 300m라 쓴 표지판이 보인다. 선농단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성종 때 조성한 선농단은 일제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면서 터를 뺏으며 명목이 끊겼다. 일제는 이곳에 청량대(淸凉臺) 공원을 만들어 훼손하였다. 1979년부터 동네 뜻있는 분들이 제를 올리기 시작하여 구청에서 선농제 행사를 잇고 있다.
선농단에서 행사가 끝나면 가마솥에 쌀과 기장을 넣어 밥을 하고 소를 잡아 국을 끓였다. 이렇게 끓인 쇠고깃국을 60세 이상 노인을 불러 먹였다. 이 국밥이 선농탕(先農湯)이고 설렁탕으로 바뀌었다. 설렁탕이야말로 왕부터 백성까지 누구나 차별 없이 먹었던 음식으로 1400년대부터 이어온 역사가 오랜 음식이다.
선농단 터 한쪽에는 높이 13m, 둘레 2.3m 되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조선 성종 7년(1476년) 선농단을 축조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어린 묘목을 심은 것으로 전한다. 550년 오랜 세월을 지나며 이곳에 있었던 역사를 모두 내다보고 있었던 나무다. 역사적인 보존가치와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선농단을 찾아가니 동네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나와 쉬는 쉼터였다. 서울에 있는 문화재에서 옛 자취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선농단만 하여도 20년 전 사진과 지금 모습은 또 다르다. 이곳에 향나무 마저 없었다면 초라함이 더했을 것이다. 향나무 한 그루가 옛 역사를 추억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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