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 잠실
서울 송파구에 잠실(蠶室)은 조선초에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하였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말로 하면 누에방이다. 조선이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면서 풍수상 안산(案山)인 목멱산(현재 남산)이 누에처럼 생겼기에 누에가 경복궁을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고 잠실을 조성했다는 얘기다. 누에가 뽕을 먹는 것이 잠식(蠶食)이니 왕권을 잠식하여 해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당시 잠실은 동잠실인 잠실과 아차산 부근, 잠원동, 연희동 서잠실 등에 잠실이 있었으나 지금 송파구 잠실이 그 이름을 대표로 남기고 있다.
잠실은 원래는 섬이었다. 잠실은 잠실도(蠶室島)와 부리도(浮里島)가 있었는데, 부리도는 지금 종합운동장 앞 정신여고와 아시아공원 일대였다. 잠실도 북쪽으로는 신천강이 흘렀고, 남쪽으로는 송파강이 흘렀다. 신천강을 건너는 나루는 신천 나루였고, 송파강을 건너는 나루는 송파나루였다. 1960년대 중반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1974년 본격적으로 송파강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신천강은 넓히고 송파강은 메워 송파강 쪽 일부가 남은 것이 석촌호수가 되었다. 그 뒤에 한강에 홍수가 들면 지대가 낮은 쪽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강에 있었던 섬은 그 밖에도 난지도, 여의도, 저자도가 있었다. 닥나무 밭이었던 저자도는 그 뒤 강남 개발에 모래를 대느라 지도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실에 터를 잡은 지 40년 가까이 되었다. 잠실에 순환 지하철이 개통 전이라 한 시간에 서너 번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는 안내양이 있었고 늘 만원이었다. 출근 때는 여행사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다. 13평 아파트는 오래 집을 비워서 연탄불이 꺼져도 옆집 온기로 따뜻하였다. 아파트 외에 큰 공터는 양철가림판으로 가렸는데, 나중에 롯데그룹 건물들이 그 자리에 섰다. 휴일에 한강에 놀러 가려면, 강변도로(지금의 올림픽도로)에 있는 수동 신호기를 누르고 길을 건넜다. 조용한 모래밭에 가서 저녁 노을을 구경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잠실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사는 곳을 알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