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마을에 가서 열초산수도를 보고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전날 밤까지 비가 오더니 밤새 그쳐 마현마을 앞 강물은 넘쳐흐른다. 여유당 앞 들에는 금계화가 시들고 여름이 건너가고 있었다. 다산은 18년 귀양살이 후 해배되어 이곳에 돌아와서, '조용한 저 운림(雲林)은 푸르고 깊숙하네, 여기서 놀고 쉬며 나의 마음 즐기노라' 하였다. 마현마을의 풍경은 그만큼 깊고 그윽한 곳이다.
강가에는 달을 즐겼다는 수월정(水月亭) 정자가 있고, 그 앞에는 다산이 고향에 돌아와서 만년에 그렸다는 열초산수도를 돌에 새겨 놓았다. 그림은 꼼꼼하면서도 절제가 있다. 다산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아 귀한 작품이다. 몇 년 전 공개한 작품으로 문인이자 정조의 부마 홍현주가 가지고 있던 소장품이다. 그림에 있는 칠언절구의 시를 풀어보면 이렇다. '사각사각 구름 낀 숲에 작은 얼굴 열리니 / 아마도 하늘바람 이곳으로 불어오겠지 / 풀 언덕 작은 정자 누가 지었을까 / 폭포 떨어지는 물소리 산꼭대기까지 메아리치네.' 내용으로 보면 어느 곳 물 떨어지는 폭포 옆 정자에서 지은 시이다.
다산은 호를 20개 정도 가지고 있었다. 다산(茶山)은 다산초당에 있을 때(1808~1818) 쓴 호이다. 돌아와서는 한강의 다른 이름 열수(洌水)를 주로 썼다. 열초(洌樵)도 다산이 고향에 돌아와서 쓴 호이다. 열초(洌樵)에서 초(樵)는 '땔나무 초'. '나무할 초'이니, 한강가에서 나무하며 사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다산의 편지를 모은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아들에게 말하기를 '책을 짓거나 초서를 하는 경우에 너희들도 열수 정아무개로 하여라' 하였다. 이때 열수는 호라기 보다는 자기가 사는 고향을 의미한다.
비 온 뒤이고 평일이라 사람들은 거의 없고 마을은 조용하다. 다산은 평소에 지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제사 때 흠향하는 것보다 더 기뻐할 것이라 했다. 그 책 이름 표지목이 몇 군데 서 있다.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연꽃도 노랑꽃창포도 다 지고 없었다. 마을 뒷쪽에 연꽃이 많이 있던 곳도 잡초로 우거졌고, 원두막은 염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을이 아름다운 산수도이다. (2018.8.30)
※ 마현마을 :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마을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 > 서울 경기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농단과 향나무 / 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0) | 2024.09.27 |
---|---|
상전벽해 잠실 (0) | 2020.02.11 |
전쟁기념관 / 호국의 전당 (0) | 2018.01.04 |
익선동 골목길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0) | 2017.06.15 |
이화동 벽화마을 2 / 색깔이 있는 풍경 (0) | 2017.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