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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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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덕동마을 숲

향곡[鄕谷] 2006. 10. 26. 09:34
솔숲과 인간 ‘아름다운 공존 300년’
포항 오덕1리 덕동마을 ‘아름다운 숲’

▲ 운치있는 소나무들로 가득한 덕동마을의 송림은 사람이 손을 대서 더 아름다워진 마을 숲이다. 마을 숲은 덕동마을의 팔경(八景)과 구곡(九谷)의 자연경관과, 고색창연한 한옥이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그림을 그려낸다. 포항 = 김선규기자
그곳에 서면 ‘사람이 더불어 가꿔온 숲’이 ‘자연의 숲’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1리의 덕동마을. 그곳에는 사람이 손을 대서 더 아름다워진 마을 숲이 있습니다.
덕동마을 숲은 수백년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심어 가꿔온 것들이랍니다. 마을 어귀를 감아도는 맑은 용계천을 따라, 우람하면서도 슬쩍슬쩍 가지를 뒤틀어 여백을 남기는 운치있는 소나무들이 빽빽합니다. 소나무 말고도 수백년이 넘은 은행나무며 향나무, 배롱나무들도 마을 곳곳에 서있습니다. 고색창연한 한옥이며 돌담이 서있는 마을 풍경과 이렇듯 잘 어울리는 마을 숲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은 ‘소나무계(松契)’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덕동마을의 솔숲에는 논과 밭이 딸려 있습니다. 과거 문중에서 ‘소나무 몫’으로 땅을 내줬던 것이지요.

지금은 소나무가 가진 땅이 논 두 마지기에 밭 여섯 마지기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논만 열다섯 마지기가 넘었던 적도 있었다네요. 이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나무를 가꾸고, 남는 돈으로는 동네어른들을 위해 회갑이나 칠순, 설과 추석에 잔치를 벌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소나무계’이지요.

덕동마을의 나무들은 대부분 정확한 나이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서있는 은행나무는 영조 19년인 1795년 2월에 심어졌고, 시원스레 쭉 뻗은 대나무 밭에 처음 대나무가 심어진 것은 1803년의 일입니다. 여름이면 붉은 꽃망울을 폭죽처럼 터뜨리는 배롱나무는 1806년에 심어진 것이랍니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의 삶과 함께 수백년을 내려온 나무들은, 앞으로도 마을 주민들과 수백년을 더 흘러갈 것입니다.

덕동마을에는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을의 ‘구곡(九谷)’과 ‘팔경(八景)’입니다. 관동팔경이나, 단양팔경이니 하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30여가구가 모여사는 손바닥만한 리(里)단위에 구곡과 팔경이라니요. 그러나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빼어난 경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구곡과 팔경의 경치도 그만이지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구곡과 팔경의 뜻풀이를 보자면 그 운치가 절로 무릎을 칠 정도랍니다. 

산림청과 생명의숲 등이 공모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무려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다 같지 싶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비밀처럼 300년 전쯤의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마을로 여러분들을 안내합니다. 

 


# 수백년을 자란 마을 솔숲의 아름다운 풍경

덕동마을은 초입부터가 범상치 않다. 포항시 기북면소재지를 지나 부남 쪽으로 향하다 덕동교를 건너면, 지금은 폐교돼 청소년수련장으로 쓰이고 있는 덕동초등학교 옆으로 울창하게 들어선 소나무숲을 만난다. 덕동마을에는 세 곳의 소나무숲이 있는데 ‘송계’라고 불리는 이곳이 1600여평으로 가장 넓다.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들은 마치 한국화 화폭에서 옮겨온 듯 이리저리 운치 있게 가지를 틀고 서있다. 솔향기 가득한 숲에 들면 ‘그 나무들 참 잘 생겼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을을 흘러가는 용계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도 또 하나의 소나무숲이 있다. 마치 섬처럼 생긴 지형에 솔숲이 있다고 해서 섬 도(島)자를 써를 ‘도송’이라고 부른다. 도송의 풍광은 용계천 건너편에서 내다보는 것이 으뜸이다. 특히 휘고 굽어서 계곡 아래쪽으로 가지를 내려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의 운치가 각별하다. 나머지 한 곳은 마을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솔숲으로, 주민들은 이곳의 숲을 ‘정계’라고 부른다.

땔감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산중의 소나무들까지 마구잡이로 벌목됐으나, 이곳의 숲은 수백년의 세월에도 온전하다. 그 이유는 숲이 조성된 연유를 따라가보면 답이 나온다. 덕동마을의 솔숲은 240여년 전 마을 뒤편 자금산 중턱에 조성한 여강 이씨의 문중 어른이 묻힌 묘터에서 용계천의 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것.

묘지에서 물이 내려다보이면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풍수에 따라 물을 가리기 위해 심어진 것이다. 아무리 땔감이 모자라도 조상의 묘를 위해 심어놓은 소나무에 손을 댈 수 없었을 터. 결국 풍수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믿음과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수백년의 세월 속에서 솔숲을 지켜온 것이리라.

#누대에 걸쳐 솔숲을 지켜온 마을 주민들

덕동마을에서 민속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동진(75)씨가 누렇게 바랜 책을 꺼내놓았다.

이른바 ‘소나무계(松契)’의 내역을 적은 책이다. 이전 것은 소실됐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6·26 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쓰인 것이란다. 소나무계란 솔숲에 부속된 논밭 열다섯 마지기로 이어온 대동계. 주민들은 솔숲에 부속된 땅을 소작을 줘서 나온 소출을 가지고 소나무를 관리하거나 마을잔치에 썼다.

책에는 소나무계의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이를테면 1950년에는 마을잔치를 위해서 누룩 240원어치, 쇠고기 82원어치, 개고기 700원어치 등을 샀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솔숲을 관리하기 위해 유사(총무)를 두고, 계를 해왔지. 솔숲에 딸린 논밭을 소작을 줘서 나온 소출로 마을제사를 치르고, 계원(마을주민)들의 환갑이나 칠순 때는 잔치를 벌였어. 마을사람들이 이 소나무 덕에 잔칫상을 받은 것이지.”

쓰임새는 많아지고, 소작료는 싸지는 바람에 논밭을 하나둘씩 팔아치워 지금은 논 두 마지기와 밭 여섯 마지기밖에 남지 않았지만, 소나무계는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책에는 지난해에도 추수 후에 39만5000원의 수입을 거둬 올해 중복 때는 3만8000원을, 마을제사 때는 4만5000원을 썼다고 적혀 있다.

소나무계에는 매년 설이나 추석명절 때면 환갑 넘은 노인들에게 ‘쇠고기 한 근 값’을 내어준다는 조항이 있다. 마을 어른들을 공양하기 위한 조항인데,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난 지금은 노인들만 30여가구가 모여 사는 덕동마을에서 달랑 네 명만 빼고는 모두 환갑을 넘어버렸다. 마을 주민 중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맡아온 소나무계의 총무일도 막내인 이희섭(57)씨까지 내려가버려 ‘장기집권’을 해야할 처지다.

#과거를 넘나드는 통로…덕동마을

덕동마을의 아름다움은 소나무에만 있지 않다. 용계천의 바위벼랑 위에 세워진 정자 용계정을 비롯해 고풍스러운 한옥들과 돌담들이 운치를 자아낸다. 또 마을 곳곳에 심어진 수백년 수령의 은행나무며 향나무, 배롱나무 등 노거수들이 그윽한 풍경을 빚어낸다. 특히 1837년에 심었다는 옆으로 누워서 자라는 향나무는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덕동마을의 ‘아름다움의 중심’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정각인 용계정이다. 논과 밭 사이를 평범하게 내려오는 하천인 용계천은 덕동마을에 이르러 기암과 계곡으로 절경을 빚어낸다. 용계천을 끼고 고색창연하게 서있는 용계정은 숙종 14년인 1687년에 세워져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용계정이 이렇듯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모두 마을 주민들의 정성 덕분이다.

한때 용계정 옆에 서원인 세덕사가 세워져 서원의 면모를 갖추게 됐는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다. 이때 마을 주민들은 밤을 새워서 단 하루 만에 세덕사와 용계정 사이에 담을 세웠다. 용계정이 서원의 부속건물로 간주돼 철거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여름날 불을 끄고 용계정 대청에 누우면,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맑은 달빛이 선경을 빚어낸다”고 했다. 그럴 것도 없이 용계정에 앉아서 용계천을 흘러가는 물과 건너편 솔숲의 그림 같은 풍광을 내다보기만 해도, 마을 주민들이 왜 이 정자를 지키려 했는지 이해가 된다.

용계정 외에도 덕동마을에는 고택들이 즐비하다. 일자형의 사랑채가 위용을 자랑하는 사우정 고택을 비롯해 여연당 고택, 애은당 고택이 마을 곳곳에 옛모습을 간직하며 서있다. 고택들에는 빨갛게 익은 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들이 서있다. 돌담으로 이어진 고샅길을 천천히 산책하노라면 인위적으로 꾸며진 민속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품 그대로의 과거’를 느낄 수 있다.

# 서정과 풍류가 넘치는 구곡과 팔경

덕동마을은 고작 30여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이름난 명승지에나 붙이는 ‘구곡(九谷)’과 ‘팔경(八景)’을 가지고 있다. 기록으로 내려오다 소실된 것을 덕동마을주민들이 문중 어른의 기억을 더듬어 복원해냈다. 용계천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나 군데군데 자리잡은 소와 폭포에 각각 이름을 붙여 구곡으로 정해 놓았는데, 규모는 작지만 하나하나 붙여놓은 이름이나 사연이 그럴듯해 풍류가 느껴진다.

사우정 고택을 중심으로 정해놓은 팔경은 ‘귀인봉이 토해놓은 달’이니, ‘자금산을 둘러싼 구름’, ‘돛을 달고 귀환하는 배의 형상인 오봉’ 등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목동의 피리소리’며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 같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어우러지는 표현들도 있다.

울창한 솔숲을 두고, 경관이 수려한 천변에 정각을 짓고,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연과 벗하는 것으로 학문을 쌓았던 선비들의 마을. 그런 마을의 모습이 덕동마을에는 그대로 남아있다. 세월이 비껴간 곳. 한 줌의 욕심도 없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곳. 그곳은 바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원형의 풍경’에 가깝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덕동마을에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일에는 무심하다.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민박을 치거나 하는 일은 “전에도 안 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용계정에 모여 앉은 마을 어른들은 손을 내저으며 “화장실도 불편하고, 방도 좁은 데다 노인들만 살아서 밥도 못해준다”고 이유를 댔지만, 그보다는 ‘놀 곳’만을 찾아드는 도회지 사람들이 반갑지 않은 탓이다.

덕동마을에서 최고령인 이동영(89)씨는 “주변사람들이 관광지로 개발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지만, 그냥 마을을 이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덕동마을로의 여행은 마을 주민들이 이렇듯 수백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런 여행은 나들이 기분에 들뜨기보다는 차분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 저것 내력을 풀어놓는 마을 어른들의 따뜻한 환대를 기대해도 좋다.

덕동마을 찾아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구 ~ 포항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서포항IC에서 나와 31번 국도를 타고 청송 방면으로 향한다.

포항에서 출발한다면 바로 31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기계면 소재지를 지나서 6㎞쯤 가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기북면으로 향하는 921번 지방도로를 따라 우회전해 10㎞쯤 가면 덕동마을이 속해 있는 오덕1리다. 덕동교를 지나면 정면으로 소나무숲이 울창한 덕동청소년수련장이 있고, 수련장 오른편으로 덕동마을이 펼쳐진다. 덕동마을을 방문한 뒤 내쳐 921번 지방도를 따라 오던 길을 이어서 가면, 성법령을 넘고 통점재를 넘어 부남으로 이어지는데 길이 좀 험한 편이지만, 목가적인 가을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문화일보 200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