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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곳간/세상 이야기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향곡[鄕谷] 2008. 3. 26. 23:09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어머니가 재작년 고향에 가셨다가 타성 사람들이 쉰이 넘은 당신 아들 이름을 마구 부르는데 언짢으셨는지, 설에 오시더니 전부 택호를 지어 알리고 그리 부르라고 부탁하라며 종방들에게 시켰다. 예로부터 자(字), 호(號), 택호(宅號)를 불러 어른 대접을 하였는데, 나이 먹은 아들이 대접 못받는 것이 못마땅 하셨던 것이었다.

 

관례(冠禮)를 치루면 본이름 외에 자(字)를 만들어 불렀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거나 동년배가 서로를 부를 때 쓴 이름인 것이다. 호(號)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니, 우리가 퇴계,다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무례가 되지 않는다. 문인,화가,학자들은 고상하다는 의미로 아호(雅號)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보에 보면 나는 자(字)가 경대(景大)이고, 호(號)는 내 스스로 만들었는데  어렸을 때 부터 혼인 전까지 살았던 향교골의 한자말인 향곡(鄕谷)이 그것이다. 향교골을 줄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시골동네란 뜻이기도 하다. 아랫사람이 불러주어야 하는데 써 달라고 하기엔 나이가 아직 이르고 겸연쩍은 일이다.

 

택호(宅號)의 택(宅)은 집을 가르키는 것인데, 벼슬이나 처가가 있는 곳의 지명을 붙여서 그 사람의 집을 부르게 된다. 참판댁, 안동댁이 그 예이다. 그렇게 되면 밤나무실서 시집 오신 어머니는 택호가 율곡(栗谷)인데, 막내인 아버지에게 시집오시어 불러줄 사람이 없었으며, 팔십이 다 되도록 그렇게 세월만 가고 시절이 바뀌어 버렸다. 나도 아내가 살았던 동네 이름을 따서 영천댁으로 하자 하였더니, 시집 온 지 이십수 년 산 지명을 가지고 이름 짓겠다는 종방간 의견에 따라 잠실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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