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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곳간/세상 이야기

아버지의 기다림

향곡[鄕谷] 2008. 4. 26. 21:53



아버지의 기다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초여름 마루에서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에 두루말이를 매달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우리 더러 식사를 마저 하라며 뒷마루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셨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니 모두 옷을 입고 마루로 나와 상을 준비하고 돗자리를 펴게하셨다. 모두 북쪽을 향해 서라며 그제야 상에 올린 두루말이를 폈다. 삼베였다. 오늘 너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이 계신 서울을 향해 절을 하라는 말씀을 채 마치지 못하고 당신이 먼저 목이 매었다. 어머니도 우시며 곡을 하시고, 우리도 눈물을 찔끔거리고 따라서 절을 하였다. 

 

식구들이 저녁을 마치도록 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그 기다림이 아버지에게는 늘 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든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에야 표현을 하셨고, 자식들에게도 방향을 일러주시고는 한참을 지켜보셨다. 깊게 생각하고 목적을 정한 후 그렇게 노력하고 행동 하였으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면 세상은 순리대로 된다고 하셨다. 그 기다림의 여유를 아버지로 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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