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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곳간/세상 이야기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짧은 기억

향곡[鄕谷] 2009. 2. 20. 23:18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짧은 기억

 

 

 

 

 

김수환추기경이 2009년 2월 16일 우리 나이로 미수(米壽)에 선종하시고, 용인 천주교성직자묘원에 안장되셨다.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머문 명동 성당에 추모 인파가 몰렸고 또 다시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어른은 온유하면서도 격동의 세월에는 고난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졌다. 민주화운동 당시 성당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감싸 안았던 기억이 그 당시 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명동성당 부근에서 일하였던 내게는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김추기경 말씀을 엮은 책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를 보면 선인(仙人)과 속인(俗人) 얘기가 나온다. 사람(人)이 산(山)에 들면 선인(仙人)이고, 사람이 계곡(谷)에 들면 속인(俗人)이라 하였다. 정치인들을 보고 평소 쓴 소리를 많이 하셨는데, 정치인들이 밑에만 있지말고 산에 가서 대화를 하라고 하셨다. 세상 사는 일을 풀어가는 방법을 기억이 나도록 짚어주셨다.  참으로 사람답게 살려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스스로에게 하루에 5분 만이라도 물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먼저 나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히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하셨다.

 

나는 수 년 전 반포성당에서 결혼 주례를 선 추기경을 뵌 적이 있었다. 조용하면서 때로는 유모어를 섞어가며 얘기를 풀어가셨는데, 내가 생각하던 모습 그대로 였고, 오랫동안 좋은 모습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우리 모두가 그 분을 추모하는 것은 그 분의 뜻이 고귀하고 모두를 보듬어 안고자 하는 깊은 뜻이 감동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서 우리가 의지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셨던 분이셨다. 우리 곁을 떠나 슬프지만 그래도 추기경님과 같은 시대에 살아서 행복하다. 당신이 고맙다고 하셨지만 정작 고마워야할 사람은 우리였다. 편히 가시고 편히 쉬시기를 빈다.

 

 

 

 

                                             김수환추기경 사진을 만지는 손길 /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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