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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5. 남양주 광릉(光陵.세조)

향곡[鄕谷] 2021. 10. 29. 10:09

 

왕릉과 숲 5

 

남양주 광릉(光陵. 세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광릉(光陵) : 세조(世祖. 세종 2남. 수양(首陽) 대군. 1417-1468(51세), 재위 13년 3개월(1455-1468)과 정희(貞熹) 왕후 윤(尹)씨(1418-1483.65세) 동원이강릉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 때 아들이다. 수양의 형이 문종(5대)이고 조카가 단종(6대)이다. 나이 어린 단종은 허수아비였고 권력은 신하가 쥐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무사를 데리고 김종서 부자를 죽이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시작하였다. 수양은 단종에게 달려가 거짓 이유를 대고 김종서를 처단했음을 알리고, 왕명을 빙자해서 왕궁에 영의정 등 관리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관리들 가족까지 죽이고 노비로 삼는 보복을 하였다. 왕조의 정상적인 가동을 무너뜨리고 조선역사의 치욕을 보여준 대사건이었다. 단종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몇 번 못 이기는 척하다가 받으니 원하던 왕(세조)이 되었다.

 

학살에 대한 보상으로 참가한 관리들을 정난공신으로 책봉하고 공신의 자손은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지어도 법으로 용서를 하는 특혜를 주는 파렴치를 행하였다. 이에 격노한 반발이 사육신 사건과 상왕복위 운동이었다. 관리들은 각기 왕에 대해  충성과 거역으로 골은 깊어졌다. 공신들은 훈구파가 되어 법 위에 군림하여 전횡하였고, 반대파는 사림파가 되었으니 사화(士禍)의 밑불은 수양이 지핀 것이다. 세조는 공신들에게 백성의 세금을 선납케 한 후 다시 백성에게 거둬들였으니 착취를 공식화하고 관직을 매직까지 하게 하였다. 정도전이 개국 당시 나라의 부를 백성에게 나누어줄 것을 이상으로 삼았는데, 이제 공신의 배를 불리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도록 했으니 잘못된 쿠데타는 나라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큰 빌미가 되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집현전을 폐지하였고, 국방력을 강화하여 여진족을 정벌하고, 국가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경국대전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세조는 권력을 위해 묻힌 피가 많았다. 철권정치요 측근 중심 정치였다. 업보를 받아서 그러한지 맏아들 의경세자는 19세로 요절하고,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였다. 세조는 잘못도 있었지만 유교이념에 투철한 신하를 견제하는 의미에서 불교 친화 정책을 폈다. 세조는 죽기 전 석실과 석관을 쓰지 말라 하였다. 묻힌 피가 많으니 몸이 빨리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부인 정희왕후는 세조에게 갑옷을 입혀 거사를 실행케 하였다. 맏아들(의경세자. 추존 덕종)이 요절하자 둘째 아들 예종을 19세에 즉위시켜 수렴청정을 하고, 예종이 1년 2개월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그녀의 손자)을 즉위케 하였으니, 남편(세조) 아들(예종) 손자(성종)를 모두 왕으로 만든 여인이다. 세조릉과 같은 능역(同原) 다른 언덕(異岡)에 좌우로 능을 썼다.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 그것이다.

 

세조는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 집안의 선산을 빼앗다시피 하여 능터로 삼았다. 능을 정한 후 주변 삼림을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광릉과 국립수목원이 자리 잡은 산림이 5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지금도 울울창창한 곳에 둘러싸여 있다. 봉선사 부근에서 광릉까지 걸어서 갔다. 여러 가지 풀꽃 이름표가 있다. 꽃이 필 때면 구경거리가 될 탐방로이다. 한창 가을이라 나무마다 열매가 익어간다. 광릉 들어가는 길엔 전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전나무의 속명 Abies'가 '높다' '올라간다'는 뜻이듯 높이도 올라간다. 광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길에 참도가 없다. 정자각은 두 능을 하나로 묶었다. 병풍석을 세우는 대신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겼다는데 이제는 능에 가까이 가지 못하니 볼 수가 없다. 세종릉이 왕릉 제도를 정리하였다면 세조릉은 또다시 변화를 준 능이다.

 

 

※ 광릉에서 본 나무 … 전나무가 대표 수종이다

상수리나무, 귀룽나무, 전나무, 신나무, 목련, 박태기나무, 층층나무, 은행나무, 복자기, 오갈피나무, 참빗살나무, 덜꿩나무, 느티나무, 갈참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

 

 

 

 

봉선사에서 광릉 가는 길

 

 

 

광릉 재실

 

 

 

오갈피나무 / 임금의 병에 약으로 썼던 나무다

 

 

 

대추나무

 

 

 

복자기

 

 

 

조선 왕릉 유일한 하마비 / 제향을 지내러 온 왕조차 이곳부터는 내려야 했다

 

 

 

전나무

 

 

 

광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참도가 없다

 

 

 

광릉(세조릉)

 

 

 

광릉(세조릉) (2009.7.11)

 

 

 

광릉(세조릉) (2009.7.11)

 

 

 

광릉 문인석

 

 

 

광릉 무인석

 

 

 

광릉 (정희왕후)

 

 

 

 

전나무

 

 

 

 

 

신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