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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6. 영월 장릉(莊陵.단종)과 청령포

향곡[鄕谷] 2021. 11. 3. 18:26

 

왕릉과 숲 6

 

영월 장릉(莊陵. 단종)과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장릉(莊陵) : 조선 6대 단종(端宗. 문종의 맏아들. 수양대군(세조)의 조카. 1441-1457(16세), 재위 3년 2개월(1452-1455))의 능. 단릉

 

 

 

단종의 짧은 생애는 참으로 기구하다. 어머니 현덕왕후 권 씨는 난산으로 단종을 낳은 지 3일 만에 죽었다. 할머니뻘인 세종의 후궁 양 씨가 젖을 먹여 키웠다. 병석에 있던 아버지 문종도 즉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했으니 단종이 즉위한 것이 11살 때이다. 대왕대비도 대비도 왕비도 없었으니 수렴청정도 못할 때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왕에 오른 지 2년 뒤 왕비 송 씨를 들였다. 수양대군이 금성대군 등 종친과 신하들을 유배시키자 즉위 3년째 14살 때 왕위를 내려놓는다. 15세 때 사육신을 사형시키고, 16세 때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청령포는 뱃길이 닿는 곳을 제외하고는 육육봉 사면이 절벽이다. 청령포에 유폐시키고 돌아오는 금부도사 왕방연은 애가 끊어질 듯하였다. 강가에 앉아 왕방연이 읊은 시조는 강가에 비로 세웠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역할이 무엇인지, 마치 병자호란 후 글을 잘 써서 왕명으로 삼전도 비문을 쓴 대사헌 이경석과 같은 처지다. 유배 후 영월 호장 엄홍도는 남몰래 밤중에 자주 문안을 드렸고, 단종이 유폐당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관음송은 그대로 서 있다. 단종은 이곳 노산대에서, 정순왕후는 450여 리 떨어진 동대문 밖 동망봉에서 서로를 그리워하였다. 그리워하는 혼을 잇는다고 최근 사릉에 심었던 소나무 한 그루를 장릉이 보이는 곳에 옮겨 심었다.

 

청령포가 여름 장마로 잠길 우려가 있어 단종은 객사 관풍헌으로 옮겼다가 유배 4개월만에 사사된다. 참으로 매몰찬 임금 세조이다.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렸다. 엄홍도는 밤중에 아들 3형제를 데리고 동강으로 갔다. 미리 준비한 관에 단종의 시신을 모시고 지게를 지고 영월 엄 씨 선산이 있는 동을지산(冬乙之山)으로 올라갔다. 소나무 밑에 노루가 앉아서 눈이 녹은 자리가 있기에 그곳에 묻었다. 그곳이 지금 장릉이다. 그리고 단종이 입고 있던 옷을 가지고 계룡산 동학사로 가서 김시습과 제사를 지내고 자취를 감추며 후손들도 멀리 피신하라 하였다. 충의(忠義)가 있었기에 장릉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암장 후 60년이 지나 단종에 대한 제사가 논의되어 중종 11년(1516년) 무덤을 찾아 조성하고, 180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년)에 비로소 단종이란 묘호와 장릉이란 능호를 받고 종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월역에서 청령포까지는 3.8㎞이고, 청령포에서 장릉까지는 2.8㎞이다. 시간이 있다면 걸어 다닐 거리이나 인도가 따로 없는 것이 농어촌 도시의 길이다. 능 입구에서 짧은 솔숲을 지나면 사방이 터진 곳에 장릉이 있다. 햇볕이 들어 눈이 녹을 만한 곳이다. 앞을 쳐다보니 멀리 산이 들어온다. 올라섰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일 듯 보인다. 단종은 삼촌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죽었기에 능 앞에는 무인석이 없다. 정자각은 산 아래 세웠다. 단종을 묻은 엄홍도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 단종과 죽음을 함께한 여러 신하들 합동 위패가 있는 장판옥, 노산 묘를 찾은 박충원을 기록한 비석 등이 장릉과 같이 하고 있다. 바른 일에 영원히 이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 씨는 18세에 홀로 되어 82세까지 살다가 남양주 사릉에 묻혔다.  

 

장릉 둘레에는 산수유와 단풍나무가 도열하여 가을이 아름답다. 다른 왕릉과 다른 점은 느릅나무가 많다는 점이다. 배고픔과 약재로 많이 쓴 나무로 고구려 때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나무다. 장릉 앞 보호수인 느릅나무는 1630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니 능을 조성하고 난 뒤 심은 나무다. 나루터 입구에는 시무나무도 있다. 이곳 영월에 잠든 김삿갓이 지은 시조에 '시무나무 아래서 서러운 손님이 쉰밥을 얻어먹었다'라고 했는데, 서럽고 피눈물 나는 세월을 살다 간 단종을 생각나게 하는 나무다. 재실에는 큰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라 재실에 심었을 것이다. 장릉 옆으로 가면 엄홍도기념관 안은 물무리골 생태지역이다. 장릉에서 아쉬운 숲을 그곳에서 마저 둘러볼 수 있다. 가을이 한창 되어 수목은 말랐지만 물매화, 개감수, 갈매나무, 괴불나무 등 다양한 풀과 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 영월에서 본 나무와 풀 … 청령포에는 천연기념물 소나무인 관음송이 있고, 장릉에는 느릅나무가 많다

① 청령포 : ⑴ 나무 : 소나무,짝자래나무,개박달나무,시무나무,몽고뽕나무   ⑵ 풀 : 더위지기

② 장릉 : ⑴ 나무 : 단풍나무,느릅나무,향나무,소나무

③ 물무리골 : ⑴ 나무 : 괴불나무, 복자기, 갈매나무, 인동초, 개나리, 화살나무, 백당나무, 쥐똥나무, 신나무  ⑵ 풀 : 개감수, 물매화, 부들

 

 

 

 

 

단종 유배지 청령포. 뒤에 육육봉이 막고 서 있다.

 

 

 

단종유배지 청령포 소나무숲

 

 

 

관음송(천연기념물). 단종이 유폐된 삶을 보았던 나무다

 

 

 

청령포 바깥 서강

 

 

 

짝자래나무

 

 

 

개박달나무

 

 

 

금표비. 영조 때 세운 이 비석은 백성이 단종의 유적을 훼손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단종도 같은 제약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무나무

 

 

 

왕방연 시조비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유폐시키고 냇가에 앉아 애끊는 마음을 시조로 읊었다는 곳

 

 

 

장릉 앞에는 문인석만 있다

 

 

 

정순왕후릉(사릉)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에서 바라본 장릉

 

 

 

산 밑에 세운 정자각. 산 위에 장릉이 보인다

 

 

 

장릉 앞 느릅나무

 

 

 

장릉 경내 느릅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