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고궁 능묘 산사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태조 계비 신덕왕후)

향곡[鄕谷] 2021. 9. 29. 12:26

 

왕릉과 숲 3

 

서울 정릉(貞陵. 태조 계비 신덕왕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87-16

 

 

정릉(貞陵) : 조선 태조 둘째 왕비 신덕(神德) 왕후 강(康)씨 (?-1396) 단릉

 

 

 

조선 왕릉은 모두 42기 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부에 6개 왕릉군(群) 14기[파주(4), 김포(1), 고양(8), 양주(1)]가 있고, 남부(화성)에 1개 왕릉 군 2기, 중부(서울)에 5개 왕릉 군 8기, 동부에 6개 왕릉 군 16기[구리(9), 남양주(4), 여주(2), 영월(1)], 북한지역인 개성에 2기가 있다. 그중 신덕왕후가 묻힌 정릉은 궁궐 경복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당초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다가 지금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에 옮겼어도 그러하다.

 

강비가 이성계를 처음 만난 날 물을 청하자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마시게 하였고, 이성계가 늦게 오면 밥을 지어서 불을 밝혀 나설 정도였다. 강비는 고려 풍습에 따라 이성계의 경처(京妻)였지만, 첫 부인 한 씨는 조선 개국 전에 죽어 강 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를 때 처가가 고려의 고관이어서 도움을 받았고, 부인도 집권 거사에 참여하였다. 강비는 태조 이성계 등극 5년 되는 해에 병사하였다. 강비가 죽은 날 이후 태조는 조회에 열흘 이상 나가지 않으며 슬퍼하였고, 직접 안암동, 행주 등지로 묻힐 곳을 물색하다가 주변 만류에도 지금 덕수궁 뒤편 정동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 처음 조성한 능이 정릉이다.

 

강비가 죽고 2년 뒤 이방원은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강비 소생인 이복동생 방번과 방석을 죽였다. 이어 제2차 왕자의 난으로 형 방간과 싸워 이겨 왕위를 받아 태종이 되었다. 다시 태조가 죽자 9개월 뒤(1409년)에는 정릉을 현 위치로 옮기고 묘로 격하시키며 봉분을 깎고 정자각은 헐었으며, 석물은 무너진 광통교와 태평관 보수에 사용하였다. 종묘에도 제사를 폐하고 능은 허물어져 돌보는 이가 없었는데, 후손이 군역 면제를 받고자 소청을 하면서 정릉의 위치를 찾기 시작하였다. 260년이 지난 1669년(헌종 10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능을 조성하였다. 그 사이 세월이 가면서 주변은 주택이 많이 들어서서 정릉 들어가는 길은 여느 왕릉과는 다르다.

 

정릉에 들어서면 능을 다시 조성한 후 들어섰을 큰 느티나무가 보호수가 되어 우람하게 서 있고, 밤나무에서는 밤송이가 툭툭 떨어지며 굵은 알밤이 절로 튀어나왔다. 열매가 달린 실한 고추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쑥부쟁이와 개미취가 가을 향을 내고 있다.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는 단출하고,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들어가는 어로(御路)는 ㄱ자로 좁은 능역에 맞게 만들었다. 장명등과 고석(혼유석 받침돌)은 정동에서 옮겨온 것이고, 나머지는 새로 조성한 것이라 석물에 그 빛이 드러난다. 장명등은 고려인의 솜씨가 남아 있어선지 멀리서 보아도 호방한 크기이다. 더 보여줄 것이 없어서 그러한지 능 옆으로 오르는 길은 있지만 못 오르게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수복방과 비각이 있는 뒷쪽으로 산책로가 있다. 팥배나무, 산벚나무, 신갈나무, 물오리나무, 느릅나무가 서 있는 옆으로 국수나무를 길게 심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나무들 사이로는 가을꽃이 나직하다. 장대 여뀌, 쥐 깨풀, 물봉선, 꽃향유가 소박하게 피어 있는 들꽃이다. 산책로는 오르내림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능역이다. 뒤편으로는 모든 왕릉이 그러하듯 소나무 숲이다. 나무들은 적지만 귀한 소나무숲길이다. 신덕왕후와 이성계의 인연과 관련 있는 그 나무는 아니지만 버드나무도 그 길에 있다. 그 사이로 가을에 여무는 조록싸리 열매와 때죽나무 열매, 팥배나무 열매가 영글어간다. 나중에 확보한 영역이지만 이만한 숲길을 조성한 것만도 다행이라 여겼다.

 

능을 나와 오른쪽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는 쪽으로 20분 걸으면 흥천사가 있다. 강비가 죽자 태조는 정동에 있던 능 동쪽에 흥천사를 세워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었다. 흥천사 종소리를 듣고서야 태조는 수라를 들었다고 실록에 전한다. 태종은 불교를 억압하였으나 태조의 유지에 흥천사는 없앨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연산군 때 화재가 나고 중종 때는 유생들이 불을 질러 절은 폐사되었다. 정릉을 복원하면서 가까이 있던 신흥암을 신흥사로 개칭하였고, 흥선대원군이 중창하면서 흥천사로 고치며 휘호를 내렸다. 세종 때에 만든 흥천사동종은 그 뒤 종루에서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하다가 지금은 덕수궁에 있다. 강비의 아들 방석은 남한산성 아래 엄미리에 묻혀있다. 문인석이 서 있는 부부의 묘는 앞뒤로 단출하다. 태조의 순애보는 정동(貞洞)에 동네 이름으로 남아 있고, 강비가 지닌 한 때의 꿈은 흩어져 역사의 한 자취로 남아 있다.

 

 

정릉에서 본 나무와 풀 …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는 곳

⑴ 나무 : 느티나무,고추나무,신갈나무,느릅나무,소나무,잣나무,물오리나무,오리나무,병꽃나무,국수나무,버드나무,병아리꽃나무,조록싸리,싸리나무,단풍나무,팥배나무,산벚나무,때죽나무,주목,산초나무,아까시나무,좀작살나무,향나무,물푸레나무,개옻나무,붉나무

⑵ 풀 : 쑥부쟁이, 개미취, 구절초, 장대 여뀌, 쥐 깨풀, 담배풀, 모시물통이, 물봉선, 미역취, 꽃향유, 수까치 깨, 진득찰

 

 

교통편 : 우이신설선 정릉 역 2번 출구

 

 

 

 

 

금천교

 

 

 

느티나무 (느릅나무과)

 

 

 

고추나무 (고추나무과)

 

 

 

정릉

 

 

 

장명등과 고석(호유석 받침돌)은 정동에서 옮겨온 것이고, 나머지는 새로 조성한 것이다

 

 

 

정릉 앞뜰. 참나무 종류 나무를 심었다

 

 

 

 

물오리나무 (자작나무과)

 

 

 

 

버드나무 (버드나무과)

 

 

 

 

조록싸리 (콩과)

 

 

 

 

소나무 숲길

 

 

 

산책길

 

 

 

산초나무(운향과)와 호랑나비 애벌레

 

 

 

때죽나무 (때죽나무과) 열매

 

 

 

개오동 (능소화과) / 흥천사 부근

 

 

 

정릉 석물을 옮긴 광통교 다리

 

 

 

정릉 석물을 옮긴 광통교 다리

 

 

 

정릉 석물을 옮긴 광통교 다리

 

 

 

정릉 석물을 옮긴 광통교 다리

 

 

 

의안대군 방석의 묘 / 남한산성(경기도 광주군 엄미리)

 

 

 

정릉의 원찰 흥천사. 왼쪽 흥천사 글씨가 흥선 대원군이 쓴 글씨이다

 

 

 

흥천사 동종 / 한 때 종루에서 시각을 알리던 이 종은 현재 덕수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