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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사도세자)과 건릉(健陵.정조)

향곡[鄕谷] 2021. 7. 1. 19:07

 

왕릉과 숲 1

 

화성 융릉(隆陵. 사도세자)과 건릉(健陵. 정조)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융릉(隆陵) : 추존 장조(莊祖. 사도세자. 영조 둘째 아들, 정조 생부. 1735~1762(27세))와 헌경(獻敬) 왕후 홍(洪)씨(혜경궁. 1735~1815(80세) 합장 능

건릉(健陵) : 조선 22대 정조(正祖. 사도세자 아들. 1752~1800(48세). 재위 24년 3개월(1776~1800)과 효의(孝懿) 왕후 김(金)씨(1753~1821. 68세) 합장 능

 

 

 

 

조선왕족의 무덤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사친(후궁, 종친)의 무덤이고, 그 외에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처럼 묘라고 한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도 묘라 부른다. 능은 42기로 남한에 40기가 있다. 518년을 이어간 조선의 왕들은 육신은 숨졌어도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왕릉은 천하 명당에 자리 잡는데, 풍수지리와 접근성을 터를 잡는 기준으로 삼는다. 왕과 관련하여 존호, 묘호, 능호가 있는데, 존호는 왕과 왕비의 살았을 때 이름이고, 능호는 시신을 안치한 무덤 이름이며, 왕명으로 쓰는 이름이 묘호이다. 묘호는 왕이 승하한 후 올리는 이름이므로 엄격히 말해 일종의 시호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추존 장조) 내외가 묻힌 능이고, 건릉은 사도세자 아들 정조 내외가 묻힌 곳이다. 건릉은 능호이고, 정조는 묘호이다.

 

융릉과 건릉 정문을 지나면 천년지 못에는 맹꽁이가 울고 오른편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있다. 재실 앞에는 오래된 개비자나무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비자나무는 남쪽에서 자라는데 개비자나무는 추운 중부지방에서 자란다. 비자나무는 잎 끄트머리가 찌르는 감이 있는데 개비자나무는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재실에는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 쓰인 향나무도 있다. 재실을 지나 오른쪽 숲으로 들면 숲과 경계를 짓는 둘레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은 둘레 솔을 우리말로 도래솔이라 한다. 조선 왕릉에는 송백(松柏)을 심는다는 기록이 나온다. 송은 소나무이고 백(柏)은 잣나무로,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도래솔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의미이고, 모두 잊고 편히 쉬시라는 뜻도 있다. 정조가 처음 묻혔던 초장지가 동편에 있고, 21년 뒤 부인이 죽고 나서 지금 건릉 자리에 옮겨 합장하였다. 사도세자가 잠든 융릉 입구에 들어서는 다리 이름이 원대황교(元大皇橋)이다. 태조 능인 건원릉에서 건원(健元)은 나라와 도읍을 처음 세웠다는 뜻인데, 고종이 세운 융릉 표석을 보면 '대한 장조의 황제 융릉'이라 하였듯, 장조 즉 사도세자를 황제국의 기초를 세운 분으로 삼고, 다리 이름도 그런 의미로 지은 것 같다.  

 

사도세자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왕이 영조이다. 영조는 어머니 숙빈 최 씨에 대한 출신성분과 경종독살설에 관련한 마음을 억누르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영조는 등극 후 소론과 노론을 누른 탕평책으로 과거사를 지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 최씨에 대한 격상에 제동을 거는 노론과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고 소론 강경파가 내건 나주벽서사건에 흔들리기 시작하여 왕위 이양을 몇 번 시도하였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대리 청정하게 하여 정쟁의 한 복판에 서게 하였다. 외척은 사도세자의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세자를 제거하기로 하고,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이 앞장서고 영조가 동조하였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자는 뒤주에서 죽고, 영조는 세자가 죽은 그날 생각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란 시호를 내렸다. 사도세자비 혜경궁 홍 씨가 지은 한중록은 사도세자 사후와 정조 사후에 지은 것으로 사도세자의 비극은 영조의 이상 성격과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충돌한 것으로 자신의 친정은 무관한 것이라 변명하고 있다. 노론은 세손(정조)까지 제거하려 하였으나 혜경궁은 아들까지 죽이는 것은 극력 반대하여 옥쇄를 받을 수 있었다. 사도세자의 능은 양주 배봉산(지금은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다가 아들 정조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 앞 홍살문 부근에는 느릅나무와 신나무가 있다. 잎이 작은 느릅나무 가지가 휘늘어져 있다. 옛날에는 느릅나무를 울타리로 썼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보호하겠다는 의미일 것 같다. 신나무는 단풍나무보다 단풍이 더 곱게 든다는 나무다. 또 능 앞에는 가래나무가 많다. 가래나무는 중국에서 천자가 사용하는 관(棺)의 재료로 썼다. 우리나라는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주로 쓴다. 가래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재(梓)는 나무 목(木)+재(宰)로, 재(宰)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나무의 우두머리가 가래나무란 뜻이다. 융릉을 나와 능 뒤쪽 산책길로 걸었다. 소나무가 대부분인데 휘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무가 많다. 길 쪽으로 햇볕이 잘 들어 줄기를 그쪽으로 뻗는 경우가 많은데, 휘어진 정도가 강하다. 장수와 늘 푸르러서 충성을 상징하는 소나무라더니 그래서 그러한 모양이다. 사도세자와 관련 있는 나무로는 창경궁 선인문 앞 회화나무가 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가까이 있었던 나무로, 나무줄기는 비틀리고 속이 비었는데 너무 아파 속이 썩어 그렇다는 나무다. 생태교란종 돼지풀을 각자 수십 포기 뽑고, 길을 돌아 정조가 묻힌 건릉으로 갔다. 건릉도 왕과 왕후를 봉분 하나에 합장한 능이다.

 

정조는 즉위하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하였고, 영조가 내린 시호 사도를 장중할 장(莊) 바칠 헌(莊獻), 장헌이라 바꾸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한이 있었지만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소수세력만 제거하고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었다. 그러나 노론은 자객을 보내 정조를 암살하려는 기도를 3번이나 하였다. 정조는 탕평으로 권력을 분산하고, 노론의 천주교 탄압 요구를 무마하였으며, 서자 출신 등용으로 계급구조를 허물었다. 정조는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 무덤을 화산으로 옮기며 현륭원이라 하였고, 고종은 장조로 추존하고 융릉으로 높였다. 정조는 능행을 자주 한 효심이 지극한 왕이었는데, 능행은 사도세자와 왕의 호위 군영인 장용영을 하나로 묶고 백성의 민원을 듣는 행사였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며 백성에게서 원성을 듣지 않게 하였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당파에 물들지 않은 인재를 양성하였고, 상업, 농업혁명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였다. 노론은 왕대비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복수를 계속하였다. 정조가 죽은 날 정순왕후가 약을 들고 혼자 침실로 들어갔기에 독살설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정조는 사회적 갈등을 정치로 풀려던 마지막 임금이다. 같이 갔던 동호인들이 능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융릉과 건릉을 안고 있는 산은 화산(花山. 108m)이다. 능 주변에는 대부분 소나무를 심었는데, 정조가 묻힌 건릉 앞은 참나무 숲길이다.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지조와 충절, 꿋꿋한 이미지가 선비 이미지가 있고 유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 숲은 점점 참나무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참나무를 심은 뜻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도 되겠고, 참나무는 구황식물이어서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참나무 이미지와 맞다. 백성과 가까이하려 한 왕이기에 참나무를 심어 정조의 뜻을 기린 모양이다.

 

 

융릉과 건릉에서 본 나무와 풀 … 참나무 숲이 있고, 가래나무, 느릅나무가 있는 곳

 

⑴ 나무 : 목련, 꼬리조팝나무, 이팝나무, 반송, 개비자나무, 향나무, 앵두나무, 백당나무, 산수유, 대추나무, 미선나무, 느티나무, 흰 작살나무, 느릅나무, 자귀나무, 가래나무, 신나무, 싸리, 때죽나무, 개암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개옻나무, 음나무, 고욤나무, 철쭉, 뽕나무

⑵ 풀 : 할미꽃, 은방울꽃, 층꽃, 하늘매발톱, 애기수영, 별꽃 아재비, 미국자리공, 호장근, 괭이사초, 돼지풀, 며느리배꼽, 원추리

 

 

교통편 : 1호선 병점역 2번 출구 → 병점역 후문 버스정류장에서 35,35-1,50번 버스 12분 뒤 융건릉 하차

 

 

 

 

 

개비자나무 (천연기념물 504호)

 

 

 

재실

 

 

 

목련

 

 

 

 

소나무숲길

 

 

 

정조대왕 초장지

 

 

 

융릉으로 들어가는 다리 대원황교(大元皇橋)

 

 

 

융릉 느릅나무

 

 

 

융릉 (사도세자 추존 장조 부부의 능)

 

 

 

가래나무

 

 

 

소나무숲길

 

 

 

휘어진 소나무

 

 

 

때죽나무

 

 

 

개암나무

 

 

 

건릉 (정조대왕 부부 능)

 

 

 

건릉

 

 

참나무길

 

 

 

 

소나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