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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숲 8. 서울 선릉(宣陵.성종)과 정릉(靖陵.중종)

향곡[鄕谷] 2021. 11. 10. 20:05

 

 

왕릉과 숲 8

 

서울 선릉(宣陵. 성종)과 정릉(靖陵. 중종)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릉(宣陵) : 조선 9대 성종[成宗, 세조 맏아들인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둘째 아들. 1457-1494(38세), 재위 25년 1개월(1469-1494)]과 세 번째 왕비 정현(貞顯) 왕후 윤(尹)씨 (1462-1530. 68세)의 능. 동원 이강릉

정릉(靖陵) : 조선 11대 중종[中宗. 진성대군. 성종의 둘째 아들. 연산군의 이복동생. 1488-1544(57세). 재위 38년 2개월(1506-1544)]의 능. 단릉

 

 

 

성종은 작은아버지인 예종이 병약하여 1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1469년) 바로 그날 할머니 정희왕후 윤 씨(세조비)의 뜻에 따라 13세에 왕이 되었다. 정희왕후는 남편(세조), 아들(예종)에 이어 손자(성종)까지 왕으로 만들었다. 세조의 아들들은 요절하거나(의경세자) 재위 1년 2개월 만에 죽고(예종),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그 아들이 연산군과 중종이다. 성종과 중종은 모두 부인이 12명씩이고, 세조의 계유정난부터 성종의 폐비 윤 씨 사건, 연산군 폭정, 중종반정까지 세상이 시끄러웠다. 왕(성종)은 어리고 세조 때 자리 잡은 부패한 공신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판서 등 관리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성종은 나이가 들면서 공신들의 탐욕과 불법을 막으려 원상제를 폐지하고, 훈구(勳舊) 공신 세력을 견제할 홍문관을 설치하였으니 세조가 폐지한 집현전의 부활이었다. 탄핵권과 언론권을 가진 언관(言官)이 생겨 공신 세력에 맞서는 정치세력인 사림(士林)이 생겼다. 조용히 힘을 키운 성종은 왕명을 거스른 한명회를 축출하고 훈구와 사림을 적절히 활용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무너진 왕권 체제를 위하여 세조 때 시작한 경국대전을 반포하고,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동국통감, 악학궤범 등을 완성하여 낮에는 선정에, 밤에는 여성편력에 빠졌다. 왕의 규방 출입이 잦자 이를 말리던 중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연산군 어머니인 왕후 윤 씨에 대해 영의정 정창손이 왕비를 폐하자고 했다. 성종은 아니라 했지만, 성종의 모친 인수대비가 강경하여 죄목도 없이 사약을 내렸으니 후일의 불씨를 만들었다. 정현왕후는 성종 4년 성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다. 두 번째 왕비 윤 씨가 폐비가 되자 이듬해 왕비가 되었다. 정현왕후는 세상을 뜬 후에는 성종의 능 동쪽 언덕에 따로 묻혔다.  

 

성종은 척불(斥佛)에 적극 나서서 사찰을 헐고, 도첩제를 정지하여 승려의 출가를 막고, 승려가 부역과 군역을 하도록 하였다. 불자인 관리는 성균관 출입을 금지시키고 불교를 믿어 재앙을 막자는 유생은 귀양을 보냈다. 인수대비가 절에 보낸 불상을 태운 유생을 대비가 노해도 왕은 가만있었으니 이는 연산군까지 이어졌다. 성종은 정치를 현상 처방에만 그치고 근본적 해결은 미루었다. 그 결과 국가는 문약화(文弱化)되고 재위 기간에 비해 업적이 적었다. 여러 병이 있어 재위 25년(1494년) 38세에 세상을 떠났다. 성종은 죽어서도 편치 못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들어와 무덤을 파헤치고 정자각은 불태워 시신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후에 선조 임금이 부장품으로 넣었던 옷을 태워 새로 만든 관에 넣었다.

 

진성대군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며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1506년(연산군 재위 12년) 박원종이 중심이 된 반정세력은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와 힘을 합쳐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정현왕후의 친아들인 진성대군을 왕(중종)으로 앉혔다. 거사에 역할도 없이 왕이 된 중종은 반정공신에 밀려 주도권이 없었다. 반정세력이었던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은 누이가 연산군 부인이고, 딸이 진성대군(중종) 부인이어서 이도 저도 못하였다. 그는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왕에 앉힐 수는 없다고 하였다. 반정이 일어나고 그는 죽임을 당했다. 중종 비도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7일 만에 폐비가 되었다. 그러다가 중종은 공신 세력을 견제할 방도로 신진 사림 세력이자 급진 개혁론자인 조광조를 등용하여 철저한 유교정치를 펴기 시작하였다. 척불 정책의 큰 흐름은 이어져 덕망 있는 사람은 승려가 되지 않으려 하고, 떠돌이 유민이 승려가 되고, 유생들은 절에 방화를 일삼고 불교는 허물어졌다. 중종은 특별한 정치적 수단과 실행이 없어 무능한 왕이 되었다. 지나친 도학에 염증을 느낀 중종은 반정공신 위훈삭제 사건을 계기로 훈구파 대신들의 상소를 받아 조광조 등 신진 사림을 숙청하였으니 기묘사화이다.

 

중종은 57세에 승하하였다. 아들 인종은 고양 서삼릉에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의 능(희릉) 서쪽에 능(정릉.靖陵)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제2계비 문정왕후는 중종과 같이 묻히고자 풍수상으로 불길하다는 이유를 들어 중종의 능만 삼성동 지금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정릉은 지대가 낮아 물에 잠기는 문제가 있어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힐 수 없어 능지를 태릉으로 정했다. 결국 중종의 능은 단릉이 되고, 3명의 왕후는 모두 따로 자리를 잡았다. 원비 단경왕후 신 씨는 온릉(양주 장흥), 제1계비 장경왕후 신 씨는 희릉(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제2계비 문정왕후는 태릉(서울 공릉동) 네 군데로 흩어졌다. 중종의 숙명은 왕이 될 때나 묻힐 때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왕이었다. 중종의 능도 임진왜란 때 시신이 훼손되어 옷가지를 넣어 다시 장례를 치렀다. 임진왜란의 치욕은 왕릉까지 미쳤다.

 

선릉과 정릉은 강남 개발 때 줄어들어 지금의 규모로 자리 잡고 있지만 강남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왕릉 숲은 생각보다 식생이 많다. 습한 지역이라 헌인릉과 같이 오리나무를 심었다. 풀들은 겨울이 오는 걸 모르는지 한창 푸르고 나무에 단풍은 아직 화려하다. 나무로는 병아리꽃나무, 히어리, 쥐똥나무, 팥배나무가 여럿 자란다. 왕릉에서 드문 대나무도 있다. 조선시대는 대나무를 화살대 용도로도 심었다. 화살대란 이름은 화살대나무의 준말이다. 재실 옆에는 5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자라고, 그 옆에는 성종과 중종이 말하여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몇몇 나무가 있다. 성종은 악기와 병기를 만드는데 긴요하다며 오동나무를 심으라 왕명을 내렸다. 관사마다 고을마다 오동나무를 심었는데, 나중에 그 오동나무를 함부로 쓰다가 벌을 받은 얘기가 나온다. 성종은 세종처럼 앵두를 좋아해 어떤 관리가 앵두를 바치자 활을 선물로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재실 앞에 감은 엄청 크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한양에는 감나무가 자라지 않아 감이 귀했다. 성종은 감을 한가위 선물로 사용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중종이 병중에 있을 때 당시 의녀인 대장금이 탕제를 올렸다. 탕제에는 살구씨가 들어가는데, 중종이 승하한 창경궁 환경전 뒤에나 이곳 선정릉 재실 뒤에도 살구나무가 있다. 중종 때나 선조 때 흉년이 들었는데, 관리가 도토리를 구황식품으로 비축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비축은 좋지만 백성들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사대부 몫까지 비축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같이 나선다면 모르겠지만 일은 늘 백성의 부담이다.

 

 

※ 교통편 : 지하철 선릉역 10번 출구에서 7분

 

 

선릉과 정릉에서 본 나무와 풀

오리나무가 많고, 500년 은행나무가 있다. 히어리, 병아리꽃나무도 여럿 있다

 

⑴ 나무 : 병아리꽃나무, 미선나무, 장구 밥 나무, 화살나무, 히어리, 병꽃나무, 오리나무, 참나뭇과 나무, 싸리, 쥐똥나무, 은사시나무, 보리수나무, 뽕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철쭉, 진달래, 소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콩배나무, 단풍나무, 작살나무, 두릅나무, 오갈피나무, 빈도리, 복자기, 신나무, 마, 구기자나무, 잣나무, 향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노각나무, 백목련, 황매화, 오동나무, 은행나무, 살구나무, 매자나무, 대나무, 고추나무, 고욤나무, 앵두나무, 골담초, 딱총나무, 산딸나무, 산수유

⑵ 풀 : 곰취, 맥문동, 별꽃 아재비, 개갓냉이, 제비꽃, 종지나물, 씀바귀, 까마중, 기생여뀌, 호장근

 

 

 

 

500년 은행나무

 

 

 

병아리꽃나무 (장미과)

 

 

 

팥배나무 (장미과)

 

 

 

빈도리 (수국과)

 

 

 

복자기 (단풍나무과)

 

 

 

노각나무 (차나무과)

 

 

 

선릉(성종릉)

 

 

 

선릉(성종릉) 병풍석과 난간석

 

 

 

빌딩으로 둘러싸인 선릉과 정릉. 사람이 걷는 길이 정자각에서 이어지는 신도(神道)를 질러가도록 되어 있다

 

 

 

콩배나무 (장미과)

 

 

 

선릉(정희왕후릉)

 

 

 

선릉(정희왕후릉) 무인석

 

 

 

정릉(중종릉)

 

 

 

정릉(중종릉) 신의 계단과 왕의 계단

 

 

 

쥐똥나무 (물푸레나무과)

 

 

 

오리나무 (자작나무과)

 

 

 

히어리 (조록나무과)

 

 

 

장구밥나무 (피나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