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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전곡리 유적 / 주먹도끼로 찾은 구석기 문화

향곡[鄕谷] 2026. 3. 5. 14:31

 

연천 전곡리 유적 

주먹도끼로 찾은 구석기 문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전곡리 (2026.2.27)

 

 

연천은 개성에서 가까운 번화한 지역이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줄기를 품고 있는 들판에 자리 잡았다. 그런 위치는 강과 산이 만나는 군사요충지였다. 고구려가 남하하며 쌓은 고구려성이 몇 군데 남아 있고,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한 후 고려 수도 개성에서 살다가 죽어서 임진강변 연천 고랑포리에 묻혔다. 고려의 종묘 격인 숭의전도 민통선 안에 있다. 경치도 좋아서 겸재 정선이 찾아와 우화등선 등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최근에는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견으로 세계 구석기 역사를 바꾼 지역이 되었다.  

 

인간은 예로부터 일을 쉽게 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였다. 재료와 발달 정도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분류한다. 인간이 유인원과 구분하는 시기가 구석기시대부터다. 구석기시대부터 원시무리사회에 해당한다. 200만 년 전부터 도구를 썼다는데, 그로부터 150만 년 뒤에 주먹도끼를 만들었다. 전곡리에서 발견한 주먹도끼는 20만 년 전 것으로 추정한다. 고고학자들이 만든 달력에 따르면, 지구역사 45억 년을 1년이라 보면 현생 인류는 12월 31일 자정을 5분 정도 남기고(35만 년 전) 등장하였다. 20만 년 전은 그 보다 더 짧다.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세월이다. 

 

1933년 일제강점기에 함북 종성에서도 구석기시대 유물을 발견하였으나 일제는 우리가 일본보다 앞선다는 것을 감추려 덮어버렸다. 1964년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물을 발견하였고, 1978년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유적지가 되었다. 그 오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 장면은 극적이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주한미군 병사 그렉 보웬은 1978.3월 한국인 애인과 한탄강에 나갔다. 예사롭지 않는 돌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프랑스에 있는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김원용교수를 찾으라 했다. 조사단은 이 넓은 지역을 17차례에 걸쳐 30여 년간 8500여 점을 발굴하였다. 연천 전곡리박물관 개관식을 준비하며 최초 발견자에게 연락하였다. 그는 그 애인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았는데, 개관식에 참가한 몇 달 뒤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구석기문화에 전기를 마련한 획기적 사건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전에는 동아시아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된 적이 없어서 동아시아는 서구에 비해 구석기문화가 상당히 뒤떨어진 것으로 보았다. 전곡리 유적이 그런 인식을 단번에 뒤엎은 것이다. 발굴단장인 김원용 선생은 고고학에 토대를 닦은 분으로 15년간 현장을 떠나지 않았으나 결말을 보지 못하고 타계하였다. 그 뒤 세계 학계가 이곳을 구석기시대 지역으로 인정하였고,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하여 고고학 지도에 표시하고 있다. 연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이고,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이 되었다.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은 주먹도끼와 찍개이다. 주먹도끼는 무엇을 찍거나 땅을 파기 위한 것이다. 주먹도끼를 보니 몸체가 두껍고 자연석에 가까웠다. 채석하여 투박하게 가공하였다. 일반인들이 주먹도끼를 보면 그저 평범한 돌이겠지만 전문가의 눈은 달랐다. 안목이라는 것은 보는 눈이다. 전문가의 눈에는 감식하는 눈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그러한 안목은 관심과 공부의 결과이다. 한 부문에 각고의 노력으로 오래 공부하면 보이는 안목이 생긴다. 

 

    

 

 

전곡리 주먹도끼 발견지

 

 

발굴 장면

 

 

발굴자료

 

 

주먹도끼

 

 

연천유적지 박물관

 

 

돌날

 

 

주먹도끼와 불 피우는 도구

 

 

주먹도끼

 

 

주먹도끼

 

 

발굴 현장

 

 

전곡선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