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세상 이야기 58

생명의 끈을 매는 사람

생명의 끈을 매는 사람 북한산 상장능선 구봉에서 (2008.2.24) 상장능선은 북한산 중 아직 개방하지 않은 산길 이다. 그 중 구봉은 그냥 오르긴 까탈스러워 쳐다보기만 하여도 아찔한 곳이어서 몇 차례 산행을 하였어도 그냥 지나치는 바윗길이었다. 오랜만에 상장능선 구봉을 오르다가 밧줄을 매는 사람을 만났다. 매어 놓은 밧줄이 낡아 그 역할을 다해가고 있었다. 무거운 밧줄을 가져와 새로 설치하러 온 것이다. 고마운 인사를 하고 바위를 다 올라서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멀리서 목소리가 겨우 들리는 위치로 다시 돌아와서 이름을 물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 함자나 얻자고 하였다. 나 보다 연배인 그 분 이름은 남정현이라 하였다. 좋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높은 산 오르듯 쉽지 않은 일이나 복을 주면 복을 받는 ..

쥐뿔의 노래

쥐뿔의 노래 작년말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문학청년 권형 얘기를 하였고, 그 형의 시 '새댁'을 내 블로그에 올렸다. 벌써 30여년 전 얘기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우린 그 시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과거의 형을 기억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 과거의 형이 내 블로그 '선비마을'에 나타났다. 그 형이 댓글로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조그만 알맹이만 있더라도 샅샅이 찾아내는 세상이 되었다. 소백산 자락 고등학교에서 교직을 업으로 삼고 계시고, 아직도 좋아하는 시의 끈을 잡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은 당신 별명인 '쥐뿔'형님께서 시집 '쥐뿔의 노래' 를 보내주셨다. 세월이 지나도 그 시를 읽으면 숨쉬는 공간이 생긴다. 문풍지에 바람결 느끼듯 신선하고 생활의 숨결이 묻어난다. ..

월드컵축구 / 희망을 쏜다

한국축구 희망을 쏜다 월드컵축구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1차전) 2008.2.6.20시 서울월드컵경기장 태극전사 프리미어리거 3인방 박지성,이영표,설기현 그들이 한국 축구 희망을 쏘겠다는 말대로 활기가 넘쳤고,'어느 자리에 서든 내가 해야할 몫을 100% 다 해낼 것'이란 박지성선수의 각오는 늘 든든하다. 붉은악마들 응원은 영하의 겨울 밤을 열기로 채웠고, 경기는 관중들의 기대 만큼 활력이 넘쳤다. 붉은악마 응원가 대로 "그댄 나의 챔피언 너와 나의 챔피언 우리 함께 외치는 승리하리라" *투르크메니스탄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나라로 FIFA 랭킹 128위로 우리나라(41위) 보다 한 수 아래 팀이지만,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가 진(2-3)..

자취생 權兄

자취생 權兄 내가 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자취생이 있었다. 교대 다니는 학생들이 자취생으로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졸업하여 나가고 또 들어오곤 하였다. 동짓날이 되니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분이 떠 올랐다. 주위에서 권형으로 불렀고 스스로도 그렇게 불렀다. 그 당시에 나 보다 몇 년 연배 였으니 지금은 고참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에서 그 날 배운 음악이나 무용 등을 직접 복습하느라 우리 집 마당은 늘 구경거리가 많았다. 우리는 툇마루에 앉아 웃으면서 어른같은 학생들이 마당을 겅충겅충 뛰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하는 모습에 같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 형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자기 주장을 하였는데,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에게 양치질 할 때 치솔을 못쓰게 하겠다고 했..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홍천군 내촌면 (2007.10.27) 친구가 마음을 닦는다고 자주 찾아가던 토굴에 갔다. 친구 왈 든 자는 주인이요 난 자는 객이라는데, 친구가 없는 집에 하루 주인이 되었다. 사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그 이치가 얻어진다 했는데 심심산골에 들어와 세상의 이치를 얻으려 했을 것이다. 첩첩산골 찾아간 집 송와일표(松窩一瓢) 명패는 뚜렸하고, 사람없는 집엔 다람쥐가 주인 이었다. 주인 없이 여름을 보낸 흔적이 뚜렸한 대나무 평상에 짐 부려 놓고 마당에 널부러진 밤송이를 주워 부엌에 군불을 지폈다. 아궁이 연기에 눈물을 쏟고 마당 흙 사이로 연기가 자욱하다. 샘물을 길어 밥을 짓고 탁배기로 목을 축였다. 장작을 패서 난롯불을 지피고 초를 밝혔다. 촛농은 뚝뚝 떨어지고… 밤이 깊어 갔다. ..

배추전 구어주는 친구

배추전 구어주는 친구 내 친구 중에는 1년에 한번씩 친구들을 불러 배추전을 구어주는 친구가 있다. 지난 주말에 초대를 받고 친구 집에 갔다. 벌써 많은 친구들이 와 있었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모두 술이나 감 등 먹을 것을 가지고 모였다. 나는 그 날 횡성에서 회사 단합행사가 있었기에 오는 길에 그 곳 명물 안흥찐빵을 사왔다. 살 때는 따끈하였던 찐빵이 그 집에 도착할 땐 이미 식어버렸지만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직접 텃밭에서 생산한 배추를 수확하여 친구들에게 구어주는 배추전은 맛도 있거니와 준비한 부부의 따뜻한 정성이 더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정이라는 것을 이렇게 내는구나 하고 따스함을 느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잡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고 밝으니 ..

사슴의 권위

사슴의 권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사슴'은 옛날의 영광을 돌이키고픈 슬픈 짐승이다. 고귀하면서도 연약한 사슴은 희생의 상징이요 신성한 품격의 상징이었다. 동명왕 신화에서는 주몽이 사슴을 바쳐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였고, 나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권위의 상징성 때문에 신라시대에는 왕관에 사슴 문양을 하였다. 사슴은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 착한 동물이며 권위인 뿔을 간직하고 순수 고결하게 살고 싶은데, 사람들은 사슴의 권위를 자르고 그 영혼을 자른다. 사슴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람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

감잎차를 마시며

감잎차를 마시며 친구와 감잎차를 나눠 마셨다. 감잎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후 6~7월에 따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잎에 실을 꿰어 그늘에 말렸다가 잘라두면 훌륭한 감잎차 원료가 된다. 뜨거운 물에다가 말린 감잎 몇 조각을 넣어 우려내면 잘 익은 햇빛의 광합성 에너지를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올라온 자양분을 마실 수 있다. 차맛은 부드럽고 순하고 가볍고 은근하다. 노인들이 겨울철에 감잎차를 물처럼 끓여 마신 것은 감기를 예방하고 비타민 보충원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고혈압이나 혈관 계통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잎차를 마시며 옛 어른들의 여유와 짐작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어른들은 감을 딸 때 일부러 몇 개를 까치밥으로 두는 배려를 하였다. 이웃 아이들이 감 몇 개 따가는 것을 방안에서 알..

구례 가서 놀란 식당 이야기

구례 가서 놀란 식당 이야기 ○ 동아식당 / 구례읍 축협하나로마트 옆 6월초에 국민학교 동창회를 지리산 부근에서 하였다. 매년 한번씩 전국 문화탐방을 하는 것이 우리 동창회 모임이다. 올해는 우리가 저녁을 먹은 식당이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총무가 인터넷을 뒤져서 찾은 동아식당이 그 식당이었다. 저녁을 미리 시켜두기 위해 찾아간 식당을 보고 무척 놀랐다. 다 찌그러진 모습을 보고 이런 장소에서 동창회 모임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총무가 차에서 내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린 후 식당안에 들어가니 몇몇 식탁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들고 있었고, 별실 식탁엔 우리들만의 자리를 준비해 두었다.국민학교 교실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와 안심이 조금 되면서,음식을 ..

함석헌선생님과 노자

함석헌선생님과 노자 책장을 정리하다가 1980년에 함석헌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노자' 책이 나왔다. 사전 지식도 없던 때였는데,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았지만, 함석헌선생님을 가까이 뵐 수 있는 기회도 되기에 회사 선배와 겸사겸사 선생님을 찾았다. 당시는 박정희정권이 끝나고 새로운 군사정부가 들어설 즈음인데, 매일 데모가 한창 때라 주변 감시가 있었고 그 중심에 섰던 분이라 세간의 관심과 감시를 받으며 명동 카톨릭여학생관에서 수업을 하였다. 마루바닥 강의실에 들어서면 백발에 하얀수염을 기른 함선생님이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조용히 앉아 계셨고, 배우는 사람들도 바스락 소리도 미안스러울 정도라 가만가만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면 함선생님이 직접 쓰신 해설문을 나눠주시고 조용하게 수업을 시작하였다. 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