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세상 이야기 58

밤(栗) 치는 일

밤(栗) 치는 일 밤은 한자로 율(栗)인데 꽃과 열매가 생긴 모양새가 그리 생겨 만든 글자라고 한다. 제례 때 집집마다 과일 쓰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조율시이(棗栗枾梨) 즉 대추,밤,감,배 순서로 놓는다. 밤을 치는 것은 시간이 걸려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늘 내 몫이다. 제물에 올리는 밤은 깎는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표현한다. 밤을 치다가 보면 밤 속에 애벌레가 있는 일이 많다. 껍질에 있던 심식충이라는 알이 붙어있다가 날이 따뜻하면 껍질을 뚫고 들어가 생긴 벌레이다. 진한 소금물에 일주일 담궜다가 쓰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 큰집에 가면 집 뒤안에 토굴이 있어서 굴 안 모래 속에 밤을 묻어 두어 싱싱하게 갈무리 하였다가 썼다. 밤은 부귀와 자식을 상징하여 혼례나 제사에 밤을 ..

나무를 사랑하는 나무 회사

나무를 사랑하는 기업 어느 특수목재 회사 내가 근무하는 직장 옆에 나무를 사랑하는 목재회사가 있다. 나무에 대한 대단한 내공이 있는 회사이다. 쌓아 놓은 나무를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넓은 나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산 다니면서 초보아마추어 수준으로 나무 공부를 하지만 이런 나무나라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목이 대부분이지만, 사람들이 필요한 쓰임새로 나무를 숙성시켜 제공하기 때문에 건축자재용 고급목재나 작가가 쓰는 귀한 나무원목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다. 대학 교수나 작가가 상주하는가 하면, 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전공학생들의 탐방 코스이기도 하다. 올림픽 카누팀 노를 여기서 만들었고, 대기업에서 귀한 나무제품 재료는 여기서 주문하여 쓴다. 회사 안에 원목을 수년에서 수십..

주력(酒歷)과 주력(酒力)

주력(酒歷)과 주력(酒力) 지금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수 없지만 어릴 때에는 술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주전자를 들고 동네 가게로 가면 독에 있던 막걸리를 퍼주었는데 한 사람이 마시기엔 만만찮은 양이었다. 집으로 오면서 골목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아무도 없으면 한 모금씩 몰래 마셨다. 처음엔 핑 돌았지만 그렇게 마시는 술이 알딸딸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혹시 냄새가 날까 봐 대문에 들어서면서 숨을 죽였다. 내 酒歷의 시작점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막걸리는 국주(國酒)라면서 막걸리만 드셨다. 옛날부터 사람이 모이는 집은 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했는데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 그런지 어머니는 집에서 술을 담그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막걸리를 좋아하시는지 서울서 있는 결혼식에 참석하실 때는 호텔이나 예..

감이 있는 가을 풍경

감이 있는 가을 풍경 가을에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풍경은 푸근해서 좋다. 곶감을 타래로 널어놓은 집은 곱기도 하고 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가 바닥에 떨어지고 가지가 휘어지게 감이 달렸다. 어릴 때 여름밤에 자다가 보면 기왓장을 때리며 생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일어나서 한 군데에 모아 두었다가 배 고프면 물렁해진 감을 간식으로 먹었다. 감이 익을 때면 사다리를 놓거나 기와지붕에 올라가서 감을 따는데 잠자리채나 대나무 갈라진 틈으로 따는 맛이 쏠쏠하였다.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려면 쭈글쭈글한 것이 모양 내기도 어려웠다. 곶감이란 말은 '곶다(꽂다)'에서 온 것으로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이란 뜻인데,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찬이슬이 맺히는 한로 때부터 서리가 내..

계산을 힘들게 하지 말라

계산을 힘들게 하지 말라 기온이 낮아지면 등장하는 음식이 호떡이요 드럼통에 구운 군고구마이다. 호떡이란 밀가루를 반죽해서 둥글게 만들고 속에 설탕이나 팥을 넣어 구운 것이고, 청나라에서 건너온 것이기에 오랑캐를 뜻하는 호(胡)를 붙여 이름지은 것은 다 아는 유래이다. 며칠 전 밖에 나갔다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호떡 파는 노점이 있기에 들렀다. '기름없는 호떡' '3개 2000원, 1개 700원' 이라고 쓰였기에 사무실 인원을 생각하고 10개를 달라 하였다. 3개를 봉지에 담아주기에 10개라고 하였더니 못 알아 들었다. 남녀 두 분이 말을 듣지 못하는 분인 것을 직감하고 열 손가락을 폈더니 깜짝 놀라며 10개를 담아 주었다. 이번엔 1만원 지폐를 내었더니 셈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서로 손짓을 해가..

친구가 보내온 옥수수

친구가 보내온 옥수수 친구가 옥수수를 보내왔다. 얼마나 인정스러운지 하는 일이 늘 다른 사람이 흉내내기 조차 어렵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살면서 일년에 한번씩 친구들을 불러다가 배추전을 구어주는 일을 벌써 수 년째 한다. 근처 텃밭에 부부가 배추를 갈아서 가을이 되면 친구들을 불러 배추전을 구워준다. 인정스러움에 친구들이 매년 많이 모여 늘 정이 넘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올해는 단양 쪽에 땅을 구해 옥수수를 갈아서 추수를 한다고 친구들을 모았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고 친구들을 모아 여름 밤을 보냈다. 추수한 옥수수는 다 나눠주고 참가하지도 않은 나에게도 편지와 함께 택배로 옥수수를 보내왔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우릴 늘 감동하게 한다. 감동은 생각지도 않으면 더 크게 오는 법이..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2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2 홍천군 내촌면 와야리 (2009.5.30) 친구가 마음을 닦는다고 구해두었던 집을 비운지도 몇 해 되었다. 그 빈 집 송와일표(松窩一瓢)에 갔다. 친구가 말하길 난 자는 객이요 든 자는 주인이라며 빈 집 들어가길 허락하였다. 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산길을 덜커덩 거리며 가까스로 올라갔다. 풍상을 겪은 대나무평상은 다 스러지고 작년 가을에 널부러진 밤송이가 아직도 마당에 가득하였다. 샘물을 길어다가 쇠솥에다 붓고, 집 주변에서 땔나무를 주섬주섬 구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불이 잘 들지 않아 연기가 아궁이에서 도로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만, 물 길어 붓다가 부엌에서 발을 헛디디고, 굴뚝 청소하다 긁히고 ‥ 같이 간 친구가 고생하였다. 집에서 빚어온 막걸리 한 사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짧은 기억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짧은 기억 김수환추기경이 2009년 2월 16일 우리 나이로 미수(米壽)에 선종하시고, 용인 천주교성직자묘원에 안장되셨다.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머문 명동 성당에 추모 인파가 몰렸고 또 다시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어른은 온유하면서도 격동의 세월에는 고난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졌다. 민주화운동 당시 성당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감싸 안았던 기억이 그 당시 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명동성당 부근에서 일하였던 내게는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김추기경 말씀을 엮은 책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를 보면 선인(仙人)과 속인(俗人) 얘기가 나온다. 사람(人)이 산(山)에 들면 선인(仙人)이고, 사람이 계곡(谷)에 들면 속인(俗人)이라 하였다. 정치인들을 보고 평소 쓴 소리를 많이 하셨는데, 정..

우리 동네 입춘첩(立春帖)

우리 동네 입춘첩(立春帖) 오늘이 입춘(立春)이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어느 분이 입춘첩을 붙여두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에 크게 길하고 힘이 넘치고 경사로운 일이 있으라는 뜻. 이십수년 살다가 재건축 때문에 몇년 나가 살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설에는 누가 예쁘장한 설인사를 PC로 뽑아 붙여놨더니, 이번에 입춘첩이라. 그냥 무덤덤 하면 한 없이 건조한 곳이 아파트인데 서로가 인사하고 양보하고 물건을 들고 오는 분 문을 붙잡아 주고 하는 사람들 모습이 좋다. 나도 괜히 한마디씩 거든다. 윗층은 한강이 잘 보이지요 하고 물으면, 내가 사는 곳은 어떠냐고 되묻는다. 겨우 보인다고 그러면, 겨우요 하며 웃는 모습이 좋아 같이 웃는다. 겨울을 뚫고 바야흐로 대지에 봄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