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세상 이야기 58

한겨울 구천동 탈출기

한겨울 구천동 탈출기 가족들과 며칠 전 무주 구천동에 갔다. 학교 다닐 때 이곳에서 일어났던 재미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학창시절 전북 장수에서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마치고 가까운 무주 구천동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였다. 봉사지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시외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한겨울 조용하기만한 구천동에 도착하였다. 열댓명이 여관방을 잡아 저녁을 지어 먹고, 주머니 사정을 확인하였더니 여관비 치루고 겨우 귀경할 정도였다. 방은 불기운 이라곤 없고 얼마나 찬지 가위바위보를 하여 진 사람 둘이서 불을 지피기로 하였다. 내가 뽑혔다. 나무를 때는 여관방이었는데 방도 추웠지만 밖에도 바람이 불고 날씨가 얼마나 찬지 손이 곱아 성냥을 켜지도 못할 정도였다. 성냥도 시원챦아 불 하나 붙이는 데 한 통을..

41년만에 선 교정

41년만에 다시 선 교정 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 / 2008.6.15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1년만에 처음으로 모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있었다. 학업의 전당, 영원히 꺼지지 않는 배움터에서 청운의 꿈을 키웠던 추억의 교정이었다. 그 때는 엄청 넓어 보이던 운동장이 지금은 어찌 이리 좁게 보이는지 만국기를 달면서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였다. 학창 때는 100m 달리기,수판 놓고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를 하고 나면 손바닥에 찍어준 손도장을 가지고 가서 공책 몇 권씩 받을 땐 어찌 그리 신이 났던지. 기마전, 콩주머니로 바구니터뜨리기, 청백 계주 때는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집에 오면 목이 쉬어 다음 날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운동회날에는 오랜만에 멸치와 달걀이 든 김밥과 삶은 달걀을 어머니가 챙겨주셨고..

아버지의 기다림

아버지의 기다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초여름 마루에서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에 두루말이를 매달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우리 더러 식사를 마저 하라며 뒷마루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셨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니 모두 옷을 입고 마루로 나와 상을 준비하고 돗자리를 펴게하셨다. 모두 북쪽을 향해 서라며 그제야 상에 올린 두루말이를 폈다. 삼베였다. 오늘 너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이 계신 서울을 향해 절을 하라는 말씀을 채 마치지 못하고 당신이 먼저 목이 매었다. 어머니도 우시며 곡을 하시고, 우리도 눈물을 찔끔거리고 따라서 절을 하였다. 식구들이 저녁을 마치도록 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그 기다림이 아버지에게는 늘 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든 어떤 일..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택호(宅號)를 지어 불러라 어머니가 재작년 고향에 가셨다가 타성 사람들이 쉰이 넘은 당신 아들 이름을 마구 부르는데 언짢으셨는지, 설에 오시더니 전부 택호를 지어 알리고 그리 부르라고 부탁하라며 종방들에게 시켰다. 예로부터 자(字), 호(號), 택호(宅號)를 불러 어른 대접을 하였는데, 나이 먹은 아들이 대접 못받는 것이 못마땅 하셨던 것이었다. 관례(冠禮)를 치루면 본이름 외에 자(字)를 만들어 불렀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거나 동년배가 서로를 부를 때 쓴 이름인 것이다. 호(號)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니, 우리가 퇴계,다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무례가 되지 않는다. 문인,화가,학자들은 고상하다는 의미로 아호(雅號)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보에 보면 나는 자(字)가 경대(景大)..

호박에 대한 단상

호박에 대한 단상 호박 정약용 호박으로 죽을 쑤어 근근이 때웠는데 어린 호박 다 따먹고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호박 아직 안 맺으니 이 일을 어찌 하랴 詩로 보아 茶山도 호박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었던 모양이다. 넉넉치 못한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뒷마당 터밭과 이어진 산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거름 한번 넣고 호박씨를 군데군데 되는대로 심어놔도 강하고 모질어서 덤벙범벙 잘 자란다. 우리 식구에겐 호박에 대한 깊은 사연이 있다. 아버지의 월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때가 있어서 양식 걱정이 현실로 되었다. 그래서 호박범벅이 구황책으로 우리 집 밥상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밥상에 그리 오랜 기간을 올라온 것은 아니나 그 뒤 호박범벅을 싫어하는 동생이 생겼다. 산후 부기를 빼..

장 담그는 일

장 담그는 일 메주콩에서 아버지표 된장까지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월별로 장 담글 때 해야할 일을 노래하고 있다. 장 담그는 일이야 말로 인간의 요긴한 일이었다. 어릴 때 메주를 쑤는 날엔 온식구가 동원되었다. 푸대를 들고 산에 올라가 가랑잎 등 땔감을 준비하고 새벽에 우물물을 퍼서 어머니가 콩을 씻는 데 거들었다. 가마솥에 메주콩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콩 삶는 증기로 부엌이 자욱하여 얼굴도 잘 안보였다. 찐 콩은 무명으로 싼 주머니에 담아 채그릇에 넣어 밟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아이들 몫이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이웃에서 볏집을 구해 물에 축여두었다가 채그릇에서 나온 메주를 옮기고 짚을 꼬아 엮은 후 통나무 기둥에 메주를 달면 메주 쑤는 일은 끝이다. 장 담그는 날은 따로 잡..

힘 '力' 서예 한 점

힘 '力' 서예 한 점 학창시절 비가 많이 오던 여름밤 설악산 양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난처한 처지에 있었던 스님 한 분을 거들어 드린 일이 있었다. 난처한 처지는 굳이 밝힐 일은 아니며 스님은 경황이 없었다. 그러고 1년 뒤. 늦은 봄 써클 친구들과 인사동으로 전시회 구경 갔다가 전국서예전에서 특선을 받은 그 스님이 쓴 서예 한 점을 만났다. 묵직한 글씨 '力'자는 화선지를 박차고 살아 움직이듯 힘이 넘쳤다. 같이 구경하였던 써클 친구가 그 글씨를 받고 싶어서 두 달치 하숙비나 되는 돈을 가지고 찾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친구는 스님으로부터 그 글씨를 받지 못하였다. 그 해 여름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서 그 스님을 만났다. 설악산에서 도와주어 고맙다며 바랑에서 꺼낸 붓글씨 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