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걸어서 보는 세상/서울 걷기 좋은 길

개화산에서 궁산까지 / 경교 명승과 투금탄이 있는 길

향곡[鄕谷] 2026. 3. 11. 17:01

 

개화산에서 궁산까지 

경교 명승과 투금탄이 있는 길

 

개화산역 - 약사사 - 개화산전망대 - 상사마을 - 행주나들목 - 강서한강공원 - 가양나들목 - 궁산 소악루 - 양천항교 - 양천항교역  

이동거리 12.3㎞. 이동시간 4:07. 휴식 0:50. 계 4:57 (2026.3.9. 맑음)

 

 

 

 

 

개화산에서 궁산으로 가는 길은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렸던 명승지였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조선 산천을 두루 다니며 아름다움을 담아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창시하였다. 그는 이곳 양천에서 현령으로 5년간 지내며 서울근교 명승을 그린 경교명승첩도 후대에 대작들 못지않은 그림이다. 겸재를 얘기하자면 사천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뺄 수가 없다. 겸재보다 나이가 많고 벼슬은 높았지만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겸재와 어울려 그림과 시를 주고받으며 예술 속 경지를 이루었다. 

 

개화산역에서 개화초등학교 담을 따라 가면 금방 개화산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숲바닥에 산호수는 푸릇푸릇하고, 소나무 줄기에 자리 잡은 사마귀 알도 금방이라도 나올 듯하다. 신라의 한 도인이 주룡산에서 지내며 자칭 주룡선생이라 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꽃 하나가 옛터에 피어 사람들은 그 산을 개화산(開花山)이라 하였고, 개화사는 그 옛터라 하였다. 개화산은 한강을 두고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마주 보는 산이다. 겸재도 산 아래에 배가 드나드는 풍경에 취해 개화사를 그렸다. 겸재 이후에 그 절은 약사암이 되었다가 지금은 약사사로 부른다. 

 

약사사에서 나와 강서둘레길이라 표시한 산길을 오르면 개화산 전망대이다. 행주산성 앞으로 흐르는 한강 줄기가 보인다. 겸재가 이곳 부근을 그린 그림 일곱 점이 사진으로 전망대에 걸려 있다. 개화사 두 점 외에 덕양산 강변에 있는 정자 낙건정(樂健亭), 행호강변에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한다는 행호관어(杏湖觀漁)가 있고, 난지도 일대 모래밭을 그린 금성평사(錦成平沙)가 있다. 나머지 두 점은 소악루에서 본 것을 그린 그림이다. 두루 보는 조망은 이곳이 가장 좋다. 

 

개화산 전망대에서 층계로 된 강서둘레길로 내려섰다. 460년가량 된 은행나무를 지나면 상사마을이다. 버스가 가끔 한두 대 들어오는 한적한 변두리 마을이다. 열매가 잔뜩 맺힌 향나무가 서 있고, 길 앞은 텃밭이 이어져 있다. 그곳을 지나면 행주나들목으로 한강변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그 외진 곳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은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졸고 있었다. 원예농사를 짓다가 버려둔 작물이 이곳저곳 보인다.   

 

한강으로 들어오니 자전거길이 나타나고, 강가 숲은 자연스러움에 가깝게 거칠다. 그것이 관리의 묘일지 모른다. 빨리 걸으면 풍경을 놓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걷는 일에 의미는 '가는 길이 즐거웠느냐'에 있다. 걷는 길에 감동이 있다면 즐거움은 더해진다. 당초 가고자 한 길에서 벗어나 돌아서 가긴 했지만 즐겁다. 방황한다는 것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걸으려 떠난 것이 아니던가. 길에는 갈대도 있고, 팽나무, 보리수, 참느릅나무, 개회나무 등 무수한 나무와 풀이 엉켜 있다. 조류 조망대에 올라 흰뺨검둥오리도 보고 그 사이로 걸었다. 

 

강(江)은 내(川)와 바다(海)를 연결하는(工) 물이다. 하류가 되니 바다처럼 넓다. 가끔 모래도 밟으며 물가를 걸었다. 이 물에 금덩이를 던진 형제가 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에 길을 가던 형제가 금덩이 두 개를 발견하고 나눠가졌다. 공암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다가 동생이 금덩이를 물에 던졌다. 형이 왜 그랬냐고 물었다. 동생이 말하길, 저는 형님을 사랑하고 따랐는데, 금덩이를 나눈 뒤로 갑자기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니 이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생각하여 그랬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형이 네 말이 옳다며  같이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곳을 '금을 던진 여울'이란 뜻인 투금탄(投金灘)이라 하였다. 그 형제는 이억년과 이조년이다. 형은 개성유수 벼슬을 마치고 오는 길이고, 이조년은 다정가를 지은 사람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하는 시가 새삼 따뜻해 보인다. 오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백년, 둘째가 천년, 셋째가 만년이었다. 이조년은 다섯째로 막내다. 이 이야기는 성주이씨가승(星州李氏家乘)과 고려사절요에 나온다. 한 푼의 욕심을 던지면 천리(天理)를 얻는다.

 

가양나들목에서 한강을 빠져나오면 궁산이다. 궁산 소악루에 올랐다. 소악루는 소악양루란 뜻으로 당나라 악양루를 본 딴 것이다. 두보의 시 '악양루에 올라서'는 학교 다닐 때 배운 교과서에 나온다. 겸재의 진경산수화인 '소악루(小岳樓)'와 '소악후월(小岳候月. 소악루에서 달 뜨기를 기다림)' 이 세상에 알려지자 서울시에서 이미 없어진 소악루를 복원하였다. 소악루에서 남산에 해 뜨는 장면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은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소악루에서 내려와 양천향교를 거쳐서 내려왔다. 양천관아는 없어지고 연립주택이 들어섰다. 옛 그림이 길을 살리고 사는 곳을 아름답게 하였다. 겸재의 그림을 따라 걷는 길은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약사사

 

 

겸재 정선의 개화사

 

 

개화산 전망대

 

 

강서둘레길 자전거길

 

 

갈대숲

 

 

버드나무

 

 

 

 

흰뺨검둥오리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방화대교

 

 

난지도가 보이는 한강

 

 

난지도 모래밭을 그린 금성평사 / 겸재 정선 그림

 

 

마곡나루 선착장 건너편은 난지도 하늘공원

 

 

궁산 소악루

 

 

겸재의 그림 소악루



겸재의 목멱조돈 그림

 

 

양천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