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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되서 깨달은 나의 불효 3題

향곡[鄕谷] 2005. 7. 21. 10:12

 

* 출처 : www.kosso.pe.kr / 글 : 고인수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상근이사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미 손주를 보셨거나, 언젠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실 분들께
참고할만한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띄웁니다.


할아버지가 되어서 깨달은 나의 불효 3題 


50대 중반의 젋은 나이에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외손주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한없이 기쁨이 샘솟는데,
이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도전, 성취, 성공... 이런 류의 기쁨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 순수, 본능, 천성의 행복감이라고 할까?

이 행복감은 아마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 위의 할아버지, 할머니,
또 그 위의 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도 똑같이 느끼셨으리라!
이것은 신명께서 인간에 내리신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부모님께 불효했던 것들이 막 떠오르게 된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이러한 심정으로 이 땅의 엄마, 아빠들에게 이 느낌을 알려주고 싶다.

첫째, 손주를 얻는 기쁨은 자기 자식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아마 열 배 이상은 될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주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드리는 게
바로 효도하는 길이다.
요즈음 60이 넘은 선배님들을 모시고 회식 자리를 갖게 되면
꼭 한 두 분 서둘러 일어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뭐가 그리 바쁘십니까?" 라고 물으면 그분들 대답이 의외다.
"이보게, 이 사진 속의 아이가 바로 내 손주야.
나, 지금 빨리 들어가 이 놈 잠들기 전에 한 번 봐야 돼!!!"
바로 이게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이다.
자식 사랑도 그러했을까?
손주를 데리고 고향을 들르면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
어쩌다가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놔두고 고향가는 날에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마음속 깊이 서운하셨겠는가?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이 반성된다.

둘째, 아이들 가정교육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도적으로 시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우선 생활 자체가 바쁘고 또 욕심이 앞서
감정적으로 자식을 대할 가능성이 크다.
맹자 7편 18장에서도 보면 "易子而敎之"하니라"라는 말씀도 있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수 없으니 '자식을 서로 바꾸어 교육시킨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보는 눈이 '현미경' 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보는 눈은 '망원경' 이다.
인생의 풍부한 경륜과 지혜를 터득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깃든 한 말씀 한 말씀에는
천금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교육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 옆에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할 기회를 자주 드리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셋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다들 "이젠 늙었군!" 이렇게 치부해 버리고
일단은 멀리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보라!
마음은 더욱 젊어지고 어린 아이를 닮아 가고 있지 않은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은 얼마나 호기심이 많으셨는가?
가는 데마다 보는 것마다 만져보고 요리조리 뜯어보고 궁리해보고...
그러다가 관광버스 출발시간을 지연시키기 일쑤였다.
여행도 좋아하시고 놀이도 좋아하시고 늘 새롭게 사시기를 좋아하셨는데
그것을 주책없으시다 핀잔을 드렸으니 이 얼마나 큰 불효였던가?

만약 지금 그 어머님이 살아계신다면
나는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님 앞에 재롱도 부리고 친구가 되어 얼씨구절씨구 춤도 추어 드리리!
천 번인들 못하겠는가?
만 번인들 못하겠는가?
그리운 어머니, 부디 오늘밤 꿈속에서라도 나오시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