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竹嶺) 689m 충북 단양, 경북 영주
죽령은 경상과 충청을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상 큰고개 이다. 오르막길 30리요 내리막길 30리여서 차 없을 때엔 고개 넘는데도 하루가 걸렸던 곳이다. 옛날 중앙선 보통열차를 타고 죽령굴을 들어가면 히뿌연 형광등 불빛이 가물가물 하였고, 디젤기관차에서 나오는 연기가 차안에 자욱하여 코를 막으며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열차가 죽령역에 서면 철로가에 숨어있던 근처 사람들이 창문새로 짚으로 묶은 찐옥수수를 팔았었다. 요즈음은 중앙고속도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자동차굴(4.5㎞)이 뚫려 잠깐이면 지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죽령은 옛부터 문경새재와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호서를 잇는 관문이었다. 과거보는 사람에게 죽령은 주르륵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진다고 과거객들이 문경새재로 다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문경 새재로 넘어가서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관운이 짧다고 하여 다시 죽령으로 과거 길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죽령은 이들 고갯길 중 역사가 가장 오랜 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5대왕 아달라왕 5년(158년) 3월에 죽령을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의하면 죽령을 연 사람을 죽죽(竹竹)이라 적고 있다. 죽죽은 이 길을 여는데 지쳐 죽어 그를 기리는 죽죽사(竹竹祠)란 사당도 있었다 한다. 죽령이란 이름이 생긴 것은 죽령에 대나무가 많아서가 아니라 고갯길을 연 죽죽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붙인 것이다.
애당초 신라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470년) 때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이 땅의 주인이 바뀌어 40여년 뒤 영양왕 때 고구려의 장수 온달장군이 출전을 하면서 죽령이북의 땅을 회복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령은 군사적 요충지요 의미있는 고개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