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의 권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사슴'은 옛날의 영광을 돌이키고픈 슬픈 짐승이다. 고귀하면서도 연약한 사슴은 희생의 상징이요 신성한 품격의 상징이었다.
동명왕 신화에서는 주몽이 사슴을 바쳐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였고, 나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권위의 상징성 때문에 신라시대에는 왕관에 사슴 문양을 하였다. 사슴은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 착한 동물이며 권위인 뿔을 간직하고 순수 고결하게 살고 싶은데, 사람들은 사슴의 권위를 자르고 그 영혼을 자른다.
사슴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람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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