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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 섬 전체가 역사박물관

향곡[鄕谷] 2007. 6. 10. 16:06


강화도
섬 전체가 역사박물관

 

인천광역시 강화군 (2007.6.5)    

 

 

 

강화도는 단군 이래 모든 시대의 역사가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대몽항쟁과 병자호란의 피난 요새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에 의한 강화도조약 등 외세가 있는 곳에  강화도가 있었다. 그만큼 강화도는 전쟁박물관이요 역사박물관이다. 하루 시간을 내어 그 동안 다니지 못한 곳 위주로 둘러보았다.  

 

강화대교를 건너가자마자 왼쪽에 있는 곳이 강화역사박물관이다.  1866년 천주교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강화에 침략한 프랑스(병인양요)를 맞아 싸운 곳이 이곳이요, 이 곳 갑곶돈대에서 싸우다 정족산성으로 작전상 후퇴하여 프랑스군을 섬멸하였는데, 그 자리에 강화역사관이 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역사관에 전시하고 있는 강화동종은 프랑스군이 약탈하려다 실패한 종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용흥궁(龍興宮).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1세부터 19세까지 살던 집인데, 원래 보통집이었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가 새로 짓고 그 뒤에 다시 고쳐지었다. 오막살이 초가에서 왕이 나왔다 하여 용흥(龍興)이라 하였다.  주변 용지에 용흥궁 역사문화공원을 마련하여 터를 닦고 있었다. 용흥궁 뒷에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밖은 전통 조선집 사찰인데 안은 기독교 전통 예배공간이다. 경복궁을 건축한 목수가 지은 집이라는데 건물내용이 훌륭하다. 우리나라 사찰의 형식을 따라 종각도 있고, 예배당 앞은 사찰에나 있는 주련도 걸어두었다.  

 

고려궁터는 성공회강당에서 200여 m 떨어진 궁터로 1232년부터 39년 동안 대몽항쟁의 중심터였다. 동헌이 있고 외규장각을 새로 만들었다. 39년간 항쟁하면서 숱한 문화유물이 불타 없어지고 백성의 고통이 막심하였다. 650여 년 뒤 프랑스군이 들어와 왕궁의 귀중한 유물을 보관하던 외규장각에서, 6천여 책 중 340 책을  약탈하고 나머지 책과 왕궁을 모두 불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약탈하면서 그랬다고 한다.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고려궁터를 나와 5㎞ 떨어진 부근리고인돌을 구경하였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북방식고인돌이다. 남방식이 짧은 굄돌과 시신을 지하에 안치하는 것이라면 북방식은 높은 굄돌과 시신을 돌방에 노출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점심 후 전등사를 찾았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세운 역사가 깊은 절인데 삼랑성문, 대웅보전, 후불탱화, 대조루, 약사전, 범종 등 구경거리가 많다. 전등(傳燈)의 의미가 '진리의 등불은  늘 꺼지지 않고 전해진다는 것'이라는데 두루 살펴볼 곳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웠다는 삼랑성 문을 들어서면 병인양요의 승장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있다. 대웅보전엔 나체 여인상이 있는데, 도평수의 돈을 가지고 도망간 주모를 벌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고 서 있도록 조각했는데, 부처의 법문을 듣고 개과천선 하라는 의미도 있고, 악녀를 멀리하라는 의미도 있다 한다.

 

 

 

 

 

 

  강화동종(강화역사박물관)

 

 

 

 

조선군의 주력 무기 홍이포

 

 

 

 

갑곶돈대(강화역사관 앞)

 

 

 

 

용흥궁 정문

 

 

 

 

용흥궁 내전

 

 

 

 

성공회 강화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동종

 

 

 

 

강화유수부 동헌 명휘헌

 

 

 

 

외규장각(고려궁터 안)

 

 

 

 

부근리 고인돌(세계문화유산)

 

 

 

 

부근리 고인돌 굄돌

 

 

 

 

전등사 대웅보전

 

 

 

 

전등사 대웅보전 여인상

 

 

 

 

정족 사고(전등사 안)

 

 

 

 

삼랑성 문

 

 

 

 

삼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