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왕도길
석촌동고분에서 풍납토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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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역-석촌동고분-석촌역-송파사거리-방이동고분-몽촌토성-풍납토성-천호역 (3시간 25분)
백제가 기원전 18년에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열고 21대 왕 개로왕 때인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패하여 이곳을 떠났으니, 한성백제는 493년간이었다. 그 뒤 660년에 백제는 멸망하였으니, 웅진과 사비에서 유지한 백제는 185년이었다. 오랫동안 한성백제의 도읍 위치를 추정하지 못하다가 그동안 발굴 결과로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은 한성백제왕도길에서 방이동고분을 추가하여 석촌동고분에서 풍납토성까지 걸었다. 남한땅에서 층으로 쌓은 돌무덤은 여기뿐이다. 돌마리 또는 돌마을로 불렀던 석촌동에는 일제강점기만 하여도 89기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8기만 남아 있다. 기원 전후에 나타나는 고구려식 무덤 형식으로 그중에 제3호 고분은 근초고왕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고분은 장군총보다 좌우 길이는 길고 높이는 낮다. 돌무덤과 흙무덤이 같이 있어 고분의 변천을 볼 수 있고, 지배 계층과 같이 쓴 공동묘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촌동고분에서 다시 석촌역으로 나와 송파사거리를 거쳐 방이동고분으로 갔다. 8기 중에서 공개한 제1호 고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돌관을 만들고 깬돌을 옆에 쌓고 흙으로 덮은 무덤이다. 한성백제 후기의 무덤 형식으로 뒤에 웅진백제시대 무덤과 연결된다. 판석으로 다듬은 부여능산리 무덤이 그 뒤의 방식이다. 개발을 하면서 이곳도 몇 기는 훼손되었다고 한다. 무덤의 변천사에 생활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것이 고분과 유물을 얻는 이유인데, 아쉬움이 있다.
방이동고분을 나와 동쪽으로 발길을 옮겨 올림픽공원으로 갔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이라 볼 수 없었다. 공원 안에 있는 몽촌토성을 한 바퀴 돌았다. 전체가 2.3㎞인 토성은 1988년 올림픽 전에 발굴 조사를 하여 기대를 모았으나, 백제토기나 고구려토기는 나왔으나 지배세력의 유물이 없어서 한성백제 초기의 성곽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성곽의 형식에 맞게 성 밖은 물길인 해자를 둘렀고, 낮은 곳은 적을 막기 위한 목책이 있다. 지금은 서울 송파구의 가장 큰 초록 공간으로 시민의 좋은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몽촌토성에서 풍납사거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풍납토성으로 갔다. 1925년 대홍수 때 유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1988년 올림픽이 지난 후 발굴하였더니, 기대 이상의 전돌과 유물이 나와서 지금은 이곳이 하남 위례성의 중심지로 인정하고 있다. 지금은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막고 있지만 너무 많은 건물이 들어차 발굴이 만만찮은 일이다. 토성 중간에 200m는 아예 끊어버리고 민가가 들어차 있으니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긴 시간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면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수백 년 왕업을 단기간에 찾을 수 있으랴. 식물이 멸종되면 복원이 요원하듯 고적도 유물도 또한 같다.
석촌동 제3호 고분. 백제 근초고왕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촌동 제2호 고분
석촌동 제4호 고분. 제3호 고분에 비해 아담하고, 흙으로 덮은 백제식 돌무덤이다
석촌동 제5호 고분. 흙무덤으로 내부의 봉토분을 흙으로 덮은 것이다
방이동백제고분
방이동백제고분 제1호분. 굴식돌방무덤이다
몽촌토성
풍납토성
백제왕도길. 붉은 선이 걸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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