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비어도 사는 나무
나무도 해가 가면 나이를 먹는다. 원줄기에는 나무의 나이와 같은 수의 나이테가 있다. 나이를 먹은 것을 그렇게 속으로 표시를 해놓는다. 오래전에 만든 나이테는 가장 안쪽에 있고, 가장 최근에 만든 나이테는 껍질 가까이에 있다. 가장 안쪽에 있던 나이테도 과거에는 지금 바깥쪽에 나이테가 했던 일을 하였다. 안쪽은 심재이고 바깥쪽은 변재이다. 바깥쪽에 나이테가 있는 곳에 변재가 일을 하지 못하면 나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큰 산에 가면 나무 안쪽인 심재가 빈 나무를 가끔 볼 수 있다. 심재는 나이가 들면 딱딱해지는데, 부식화되는 백재(白材)가 되는 것이 있다. 백재는 질이 나쁘고 단단하지 못해서 쉽게 썩는다. 그런 나무는 줄기 속이 비는 공동화 현상(空洞化 現象)이 나타난다. 내부 목질층이 부패되어 무너지고 없어져 텅 비게 된다.
그런데도 나무는 가지와 잎을 내며 끄떡없이 살아간다. 생명력은 바깥 층에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 중심부가 허물어져도 새로운 젊은 층이 떠받치고 있어, 나무는 죽는 일이 없이 수백 년을 살아간다. 나무는 젊게 사는 동시에 늙고 있고, 죽으며 살고 있다.
나무는 평소부터 가진 것을 나누며 복을 쌓고 있다. 과실을 나누고, 숨 쉴 공기를 만들고, 빈 공간을 동물에게 내어 주고, 아낌없이 몸을 내놓는다. 나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너그러이 나누고, 모든 것은 놓아두고 간다.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무겁고 귀중한 말이다.
'자연의 향기 > 숲향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리목 6. 한라산과 오름에 사는 사랑나무 (0) | 2023.05.26 |
---|---|
바위를 뚫고 사는 나무 (0) | 2023.04.12 |
동행 5. 숲을 걷는 것 (0) | 2023.02.02 |
동행 4. 살피고 걷는 것 (0) | 2023.02.01 |
회초리 나무 / 싸리와 물푸레나무 (2) | 2023.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