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
뒤를 보아 뒷간, 뒤에 있어 뒷간
뒷간은 똥이나 오줌을 누는 곳으로 변소의 우리말이다. 뒤를 보아 뒷간이고, 뒤에 있어 뒷간이다. 측간(厠間)은 집옆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는 뒷간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상류 사회에서는 측간으로 쓰고, 일반 백성은 변소(便所)라 했다. 된소리 '편'이 '변(便:편할 변)'으로 바뀌었다. 똥을 누면 크게 편하고(大便), 오줌을 누면 작게 편하다(小便). 근심을 더는 해우소(解憂所)는 절에서 쓴다. 화장실은 일제강점기부터 쓴 말이다.
송광사는 솥이 크기로 유명하고 선암사는 뒷간이 깊기로 유명하다. 각 절에서 온 스님들이 자기 절 해우소가 크다고 발바닥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높이에 대하여 서로 자랑하였다는 우스개도 있다. 널판에 쓴 선암사 뒤간 글씨도 일품이다. 뒤간을 오른쪽부터 적었기에 뒤간이냐 간뒤냐며 따지기도 하였다. 해우소란 모든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이겠는데, 기막힌 발명어이다. 급한 뒤처리를 하고 나면 근심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세상 근심을 다 풀어버리는 해우소라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궁중에서는 매우간(梅雨間)이라 하였는데, 큰 것은 매(梅)고, 작은 것은 우(雨)였다. 역시 고상한 이름이다.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사돈과 가까이 있으면 불편할 것이고, 뒷간이 부엌과 가까이 있으면 위생상 좋지 않았다. 뒷간은 대개 집 뒤에 거리를 두고 지었다. 어릴 때 우리 집 뒷간은 본채에서 멀었다. 밤에 동생이 뒷간에 갈 때는 나는 별 쏟아지는 호두나무 아래서 손전등을 비춰가며 망을 보며 기다렸다. 뒷간은 나무판자가 오래되어 삐걱거리기도 하였고, 바람이 불면 세찬 바람이 안으로 숭숭 들어왔다. 집 뒤가 바로 산이어서 산 짐승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판자로 뒤꼍을 막아 두었다. 바람이 불어 세워놓은 옥수숫대가 흔들리거나 가랑잎이 바람에 날려 바스락 거리면 산짐승이 아닌가 하고 지레 겁을 먹어 머리끝이 쭈뼛하였다. 그래서 밤엔 요강이 요긴하다. 혼수품에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 요강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너희 할머니는 장에 갔다가 오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참았다가 우리 밭까지 와서 누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만큼 거름이 귀했다. 옛날엔 똥오줌은 농사에 필요한 거름이었다. 똥장군을 지게에 지고 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호박을 심기 전에 뒷간에서 그것을 가져와 거름을 주기도 하였다. 그 밑거름을 보관하던 장소가 뒷간이다. 잿간이 옆에 있어서 뒤처리를 하고 재를 부어 냄새가 안 나게 하였다. 왕겨를 덮거나 나뭇잎을 덮기도 하였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수세식 변소(WC)가 생기고, 목욕탕이 붙은 화장실(TOILET)이 생겼다. 뒷간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배설물은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공동주택에 공동변소는 뒷간을 집 밖에 둔다는 것도 있겠지만, 뒷간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니 밖에다 둔 것이다.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두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바뀌어 옛말이 되었다. 뒷간 오갈 적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데, 사람 마음 보다 뒷간의 변화는 더 크다. 뒷간이 멀리 있을 때는 남녀 별도로 있던 것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구별하지 않게 되고, 한번 나간 배설물은 자연에서 이용하지 못하고 더 멀어지게 되었다. 개인집에서 가장 많이 변한 공간이 부엌과 뒷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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